우린 모두 추격자였다. [휴직에세이 EP08]
Автор: 폴리마테스 Polymathēs
Загружено: 2026-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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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의 나는 숫자로 가장 빠르게 설명된다. 연봉, 고과 등급, 그리고 내가 달성해야 할 KPI의 백분율. 그 숫자들은 나의 위치를 알려주는 좌표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난 겁쟁이였다. 숫자가 곧 나의 가치라 믿으며 어디까지 왔는지, 얼마나 더 가야 하는지에만 골몰했다.
숫자로 번역되는 삶. 나는 그 좌표의 기원을 알고 있다. 시작은 중학교 때였다. 첫 번째 중간고사 성적이 나오던 날, 나의 첫 좌표가 찍혔다.
우리 엄마는 교사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엄마는 공부하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내가 제 발로 학원에 간 건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지적인 호기심 때문은 아니었다. 난 '원은 왜 360도일까'와 같은 질문엔 관심도 없었다. 단지, 언제부턴가 친구들은 놀이터에 보이지 않았다.
첫 시험 결과는 전교 40등. 나쁘지 않은 시작이었지만 정처 없이 부유하던 무중력의 시간은 거기서 끝났다. 등수가 생기자 세상은 다른 방식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선생님, 친구들, 부모님이 나를 값으로 읽게 되자, 원점으로부터 더 멀어지고자 하는 마음이 생겨났다. 문제는 등수가 아니라, 등수가 생겼다는 사실이었다.
우리 반엔 전교 1등이 있었다. 원점과 가장 먼 존재. 같은 교복, 같은 책상, 같은 수업인데도 왜 그는 저기까지 가 있는 걸까. 쉬는 시간에도 그의 시선은 문제집에 가 있었다. 한 번은 어깨너머로 그 친구가 보고 있는 책을 봤다. 처음 보는 기호들과 알 수 없는 수식들. 그중에서도 요란하게 쓰여있는 글씨가 보였다.
"이건 뭐야? 10g(그램)?"
천진난만한 내 질문에 그 친구가 웃으며 대답했다.
"10g이 아니고 이건 log(로그)라는 거야."
부끄러울 새도 없었다. 고등학교 수학문제를 풀고 있던 그를 본 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좌표평면 위에 서 있던 1등이 갑자기 지평 너머로 사라져 버렸다. 그건 1등과 40등의 거리가 아니었다. 그날부터 내게 공부는 무언가를 깨닫는 기쁨이 아닌, 처절한 추격이었다.
그 친구의 문제집에서 봤던 로그는 내 안에 오래 남았다. 중학교 3학년, 마침내 내 손이 그 글자에 닿았을 때 그것은 수학 기호가 아니라 나를 채찍질하는 글자였다. '너는 아직 거기냐'라고 묻는. 대학에 가고, 회사에 왔는데도 그 질문은 여전히 날 따라다닌다.
회사는 거대한 좌표평면 그 자체였다. 서류 전형과 면접은 결국 그 사람의 현재 위치를 보는 과정이었으며, 그렇게 모인 동기들은 모두 원점에서 수천, 수만 킬로미터는 족히 떨어진 지점에 서있었다. 그러나 곧 새로운 레이스가 시작되었다. 동료들은 저마다의 로그를 가슴에 품고 지평선을 응시하며 계속해서 뛰었다. 우린 모두 추격자였다.
10년 차가 되던 해, 나는 그 끊임없는 레이스를 잠시 이탈했다. 휴직 이후 난 원점으로 굴러 떨어졌다. 수입도, 역할도 사라진 '0'의 자리. 그런데 원점은 아무것도 없는 곳이 아니었다. 그곳에 서자 사방으로 멀어지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망망대해 위에서 360도 전방향으로 항해하는 이들. 우린 그 끝에 무엇이 있는지 모른채 서로의 위치를 훑어댔다. 연봉이 얼만지, 진급을 했는지, 어디까지 멀어졌는지.
다들 어디로 향했던 걸까. 내 안에 박혀있던 로그를 꺼내 본다. 나를 평생 채찍질해 온 수학 기호. 그 차가운 수식이 내게 속삭인다.
"고작 여기에서 멈추다니."
그런데 좌표 밖으로 걸어 나오자 그토록 거칠었던 로그의 다른 얼굴이 보인다. 무엇을 지나 어디로 향하는 지를 적어 내려간 흔적. 바다를 건너는 항해사는 이 log를 '기록'이라는 의미로 사용한다. 로그는 그 채찍질에 이끌려 여기까지 온 나의 항적(航跡)이었다.
나는 이제 한 발 물러나려 한다. 휴직은 원점으로의 추락이 아닌, 나만의 기록을 쓰기 위한 첫 출항이 아닐까. 숫자가 지워진 자리에서 나는 비로소 나의 문장을 적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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