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차 대기업 과장의 휴직 사유 [휴직에세이 EP01]
Автор: 폴리마테스 Polymathēs
Загружено: 2026-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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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아내와 만난 지 9년 차가 되었다. 2018년의 어느 여름날, 우린 서로 결혼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한 채 사귀기 시작했다. 출근길을 달리던 차 안에서였다. 그리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우리에겐 수많은 기념일들이 있었다. 서로의 생일, 결혼기념일과 같은 일반 적인 기념일들, 100일, 1년과 같은 우리만의 날들, 아내가 특히 좋아하는 크리스마스까지. 그리고 기념일이 다가올 때면 아내는 나에게 항상 이런 질문을 했다.
"자기 혹시 갖고 싶은 거 있어?"
나는 이 질문에 명확하게 대답한 적이 거의 없다. 내 대답은 늘 비슷했다. "생각해 볼게." 혹은 "글쎄..." 그리고 그 결과 내 옷장에는 아내 취향의 선물이 가득하다. 내가 내 옷을 사입은 건 정말이지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물론 나도 갖고 싶은 게 있었다. 꽤나 긴 시간 동안 늘 갖고 싶어 했지만 차마 아내에게 사달라고 할 수는 없는 것. 바로 '시간'이다. 애석하게도 내 시간은 마치 엔비디아(NVIDIA 社)의 고성능 GPU와 같다. 아직 생산되지도 않았는데 매진되어 있다. 나의 시간이 그만큼 가치 있는 것일까? 나는 이를 객관적으로 수치화할 수 없지만 이 분야에 전문가가 있다. 그 전문가는 나의 첫 고용주, 회사다. 내 시간을 처음 구매한 회사였다. 9년 전 회사는 이력서와 면접을 통해 나라는 사람이 시간을 가치 있게 쓴다고 결론지었고 고맙게도 내 미래를 사고자 합격통지서를 건네주었다.
계약 조건도 파격적이었다. 내가 원하는 한 난 계속해서 시간을 팔 수 있으며 내가 원하지 않으면 언제든 계약을 파기할 수도 있었다. 심지어 내 시간의 가치는 반도체 사이클에 따른 가격 변동성도 없었다. 하루아침에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르지도 않지만 반대로 폭락하지도 않는다. 다시 말해 내 임금은 하방경직성을 가지고 꾸준히 증가하며 이는 내 삶에 안정성을 제공한다. 그것도 무려 수십 년 동안. 꿈이 많았던 27살의 나는 그렇게 회사와의 계약서에 도장을 쾅 찍어버렸다.
한동안 난 아낌없이 내 시간을 공급했다. 급여라는 보상 이외에도 많은 것들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회사와 함께 성장하는 나를 보며 갖는 만족감, 일을 하나씩 배우고 수행해 가며 얻는 성취감, 훌륭한 동료들과 어울리며 형성되는 유대감과 그들로부터의 인정과 같은 것들이다. 계약서상 존재하지는 않지만, 난 이러한 감(感)들이 돈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고 생각한다. 이따금씩 번아웃이 올 때 나를 지탱해 준 것은 돈이라기보다는 늦은 밤 업무를 같이 마친 선배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나누었던 감(感) 덕분이었다.
하지만 나는 변했다. 언제부턴가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이 아까워지기 시작했다. 회사가 변한 것도 아니고 일이 힘들어진 것도 아니다. 여러 차례 부서를 옮겼지만 주어지는 일은 금세 익숙해졌고 난 어느새 능숙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변한 건 내가 시간을 대하는 태도였다. 도장을 찍었을 때 난 시간을 쓰는 만큼 내가 성장한다고 믿었다. 조금 늦게까지 일하고, 조금 더 책임을 지고, 조금 더 참으면 분명 더 나은 사람이 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능숙함은 더 이상 나를 앞으로 이끌지 못했다. 내 안에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때부터 회사 생활은 숨막힘의 연속이었다. 하루 종일 업무를 쳐내는 와중에도 마음속에서 문장이 하나씩 떠올랐다. 이 시간을 계속 쓰고 나면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까. 10년 후의 난 어떤 모습일까. 누군가 내게 뭐 하는 사람이냐고 질문하면 난 대체 뭐라고 대답해야 하는가. 그러다 오래된 계약서에 눈길이 갔다. 나는 먼지가 수북이 쌓인 그 서류를 다시 꺼내보았다. 그리고는 그 두꺼운 서류를 한 줄 한 줄 읽어 내려갔다. 마치 임대차 계약서나 주택 매매계약서를 볼 때처럼 아주 신중하고 꼼꼼하게. 그럴 필요가 없었는 지도 모른다. 찾고자 하는 조항이 있었기 때문이다. 계속 아래로 향하던 내 시선이 어느 한 지점에서 멈췄다. 그곳엔 마음이 바뀌면 언제든 계약을 파기할 수 있다고 적혀있었다.
난 본격적으로 저울질을 시작했다. 내 시간의 가격과 이에 대한 대가로 회사로부터 주어지는 모든 것들의 가격. 먼저 급여, 안정성, 커리어, 인정, 성취감 등을 한쪽 편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반대 편에 내가 잃고 있는 것들을 올려놓았다. 저울 위에 올려놓을 수 없을 정도로 무겁게 느껴지는 것들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멍하니 앉아 있는 시간, 무언가 도전할 수 있는 시간, 나는 어떤 사람이며 뭐 하는 사람인지 고민해 보는 시간. 한 마디로 시간이 내 것이라는 느낌이다. 나는 그 느낌을 온전히 가져본 적이 없다. 그걸 가졌던 시절엔 그 소중함을 몰랐었다. 시간은 당연히 내 것이었기에. 내 청춘은 그렇게 지나갔다.
저울질을 하는 와중에도 시간은 나를 떠나고 있었다. 지금 잃고 있는 것과 내 선택으로 인해 잃게 될 것. 저울질은 끝내 결론을 주지 못했다. 어쩌면 이를 계산하는 건 불가능했다. 멍하니 앉아 있는 시간이나 나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에 가격표가 있을 리가. 사실 계산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그저 선택이 필요한 것이었다.
"자기, 혹시 갖고 싶은 거 있어?"
그 무렵, 아내가 같은 질문을 해왔다. 여느 때와 같이 "글쎄..."를 꺼내려다 잠시 입을 다물었다. 잠깐의 정적 뒤 나는 시간을 갖고 싶다고 대답했다. 아내가 내 눈을 바라봤다. 그 눈빛이 "그래"였는지 "제정신이야?"였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고맙게도 아내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아침이 되면 난 처음으로 일하지 않는 사람이 된다. 내가 구매한 시간은 단 1년. 내 생에 가장 큰 지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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