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사랑 [휴직에세이 EP09]
Автор: 폴리마테스 Polymathēs
Загружено: 2026-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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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잔해와 봄의 기척이 뒤섞인다. 3월의 방 한구석. 겨울 내내 잎을 떨구던 화분에서 연약한 초록이 고개를 내민다. 그 여린 잎은 내게 시작을 알린다. 살면서 수많은 '첫날'을 통과해 왔지만, 유독 선명한 시작의 날이 있다. 고등학교 입학식 날이다.
운동장은 꽁꽁 얼어 있었다. 처음 입은 교복 자켓은 갑옷처럼 딱딱했고, 축하 인사는 차갑게 굳은 채 울려퍼졌다. 시선을 돌리다 낯선 얼굴 하나가 걸렸다. 큰 키와 단발머리, 피부가 눈이 시릴 만큼 하얗던 아이. 그 아이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혼자만 다른 계절을 가진 것처럼 보였다. 난 그 계절의 위치를 찾기 시작했다. 1학년 2반 아니면 3반 정도. 출석번호 10번쯤.
첫눈에 반했던 건지는 모르겠다. 내겐 그저 희미하게 빛나는 정도였다. 대학 입시라는 거대한 관문을 앞둔 수험생에겐 그 빛은 너무 멀리 있었다. 하지만 나는 서서히 그쪽으로 이끌렸다. 점심시간, 복도, 운동장, 혹은 학교 행사가 있는 날이면, 지나가는 얼굴들 속에서 그 아이를 찾았다. 들키지 않을 만큼만 아주 조금씩. 뷰파인더 안으로 그 애가 들어올 때마다 난 마음속으로 셔터를 눌러댔다. 처음엔 그 정도면 충분할 줄 알았다.
호기심에 불꽃이 튄 건 그 아이의 이름을 알게 된 순간이었다. 언젠가 복도에서 마주쳤을 때, 우연히 이름표를 봤다. 머나 먼 여정 끝에 지구에 도착한 별빛처럼, 멀리서만 반짝이던 그 이름이 마침내 나에게 닿았다.
그 빛은 닿자마자 날 파고들었다. 이름이 생기자 그 아이는 내 세계의 주인공이 되었다. 취미는 뭘까, 성격은 어떨까, 목소리는 어떤 모양일까. 그러나 내겐 궁금증을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남중을 졸업한 나와 여중을 졸업한 너, 우리 사이엔 연결고리가 없었다. 꿈에서도 그리운 아이는 불러도 답을 하지 않았다.
책상 모서리에 작게 그 아이의 이름을 적었다. 작게 적힌 글자였지만, 그 이름은 하루 종일 나를 따라다녔다. 틈이 생길때마다 난 생각했다. '고백을 받아준다면, 첫 데이트를 한다면, 그 손을 잡게 된다면.' 내 ‘만약’은 전부 그 애였다. 그러다 내 감정이 터지고 말았다.
여느 때와 다르지 않던 하굣길이었다. 멀리서 희미한 빛이 보였다. 그 애의 뒷모습이었다. 순간 나는 뛰었다. 내게 그런 무모함과 용기가 있는 줄 몰랐는데, 몸이 먼저 반응했다. 심장은 앞질러 갔고 숨이 가빠졌다. 그 아이에게 다다르자 나는 망설임 없이 말했다.
"저기..."
그 아이가 고개를 돌렸다.
"네?"
나는 당황했다. 같은 교복에 넥타이 색깔도 똑같았는데, 그 애는 존댓말을 했다. 다음 말을 꺼내기까지, 그 짧은 시간을 내 인생에서 가장 길게 썼다.
"혹시... 핸드폰 번호 좀 줄래요?"
그 아이가 어떤 표정이었는지, 내가 떨면서 말했는지, 지나가는 학생들이 우릴 쳐다봤는지, 솔직히 잘 기억나지 않는다. 정확히 기억하는 건 그 아이의 대답뿐이다. 대답을 기다리는 시간, 그 순간만큼은 이 세계에 우리 둘만 존재했다. 세상에서 가장 초조한 사람과 세상에서 가장 먼 사람. 혼자만 다른 계절을 가진 그 아이는 이번엔 겨울이 되어 내게 말했다.
"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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