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성전을 헐라 (요한복음 2장 13~22절)
Автор: 예수쟁이 이집사
Загружено: 2026-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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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이 성전을 헐라
📖 성경 : 요한복음 2장 13~22절
👨💼 설교 : 김운성 목사
📅 2020년 10월 11일 #영락교회 @youngnakchurch
1️⃣ 도입: 예배와 현실(비대면, 선교대회)
⦁ 찬양을 통해 “나는 십자가 뒤로 숨고, 주님만 드러나는 겸손한 예배”를 강조.
⦁ 비대면 예배가 길어졌지만, 방역 완화 기대 속에 2주 선교대회를 더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기를 소망.
⦁ 지난주 설교(마가복음 14장)에서 “사람 손으로 지은 성전”이 아니라 “하나님 손으로 지은 성전”을 다뤘고, 오늘은 요 2장으로 더 깊이 설명하겠다고 전개.
2️⃣ 핵심 문제제기: 왜 ‘성전 발언’이 거짓증언인가? (마가복음 14장 57~58절 vs. 요한복음 2장 19절)
겉으로 보면 예수님이 실제로 “이 성전을 헐라… 사흘 만에 일으키리라”(요한복음 2장 19절) 말씀하셨으니, 증인들의 말이 사실처럼 들릴 수 있음. 그런데 성경은 그 증언을 “거짓”이라 규정한다. 이유는 3가지.
(1) 주어 바꿔치기(책임 전가)
⦁ 예수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유대인들이 헐 것).
⦁ 거짓증인: “내가(예수가) 헐고…”(마가복음 14장 58절).
⦁ 예수님의 말씀 구조 자체를 바꿔, 예수를 ‘파괴자’로 몰아감.
(2) 의미 오해(성전 = 건물로 착각)
⦁ 예수님이 말씀하신 성전은 자기 육체, 곧 부활하실 몸(요한복음 2장 21절).
⦁ 유대인들은 “46년 동안 지은 성전”(요한복음 2장 20절)처럼 건물 성전만 떠올림.
⦁ 뜻을 이해하지 못한 채 왜곡 전달했으니 거짓증언.
(3) 목적 왜곡(파괴가 아니라 새 창조·해방인데 파괴로 몰아감)
⦁ 거짓증인들이 쓴 “헐다”는 뉘앙스: 파괴/붕괴 쪽(설교에서 ‘카탈~’ 계열로 설명).
⦁ 예수님이 쓰신 “헐다(λύω, 루오)”는 성경에서 자주 “묶인 것을 푼다/해방한다”의 뜻으로 쓰임.
⦁ 결론: 예수님은 무너뜨려 끝내자는 게 아니라, 속박을 풀어 새 생명으로 이끄는 목적인데 그걸 파괴로 둔갑시켰다.
3️⃣ “루오(풀다)”의 성경적 용례로 본 예수님의 의도
설교는 ‘루오(λύω, luo)’가 “파괴”보다 “해방/풀어줌”에 가까운 의미로 쓰이는 예들을 들어, 예수님의 성전 선언이 ‘해방 선언’임을 강조한다.
⦁ 누가복음 13장 16절 : 18년 매인 여인을 안식일에 “메임에서 푸는 것”
⦁ 마가복음 7장 34~35절 : 혀 맺힌 것이 “곧 풀려”
⦁ 사도행전 2장 24절 :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심”(부활)
⦁ 사도행전 22장 30절: 결박을 “풀고”
⦁ 에베소서 2장 14~15절 : 원수된 것, 막힌 담을 “허시고”(유대/이방의 담을 무너뜨려 하나 되게 함)
⇒ 따라서 “성전을 헐라”는 “사람을 결박하는 체계를 풀어라”라는 방향성이다.
4️⃣ 당시 성전이 사람을 어떻게 결박했나?
예수님이 ‘헐라’고 하신 배경: 성전이 거룩의 이름으로 오히려 사람을 억압하고 속박하는 구조가 되었기 때문.
(1) 돈의 결박(장사꾼 성전)
⦁ 제사용 짐승 판매, 환전 수수료 등 성전 경제의 착취로 순례자들을 억압.
⦁ “도와준다”는 명분 아래, 더러운 돈의 먹이사슬이 작동.
(2) 권력·신분의 결박(차별 구조)
⦁ 이방인 뜰–여인–남자–레위–제사장–지성소로 갈수록 접근 제한.
⦁ 누구나 하나님께 나아가야 하는데, 신분/성별/출신으로 차단.
⦁ 성전 내부도 대제사장부터 레위인까지 촘촘한 위계질서로 억압.
(3) 거룩의 교만이 만든 ‘죽은 신앙’
⦁ 겉으론 가장 거룩해 보이나, 실제로는 악취 나는 타락.
⦁ 결과적으로 성전은 “기도의 집”이 아니라 “죽은 신앙의 무덤”처럼 되어 버림.
5️⃣ 설교의 결론: 선교란 “풀어주는 것”
2020 선교 주간을 맞아 “선교의 근본 정신”을 이렇게 정의한다.
⦁ 선교 = 모든 결박과 속박에서 풀어 주는 일
⦁ 해외로 나가야만 선교가 아니라,
▸따뜻한 말 한마디로 상한 마음을 풀어줌
▸작은 도움으로 삶의 막힘을 풀어줌
▸복음을 전해 멸망에서 풀어줌
▸교회의 선교 사역으로 억압받는 이들을 풀어줌
이 모두가 선교적 삶.
또, 한국에 온 선교사들의 역사(교육·의료·생활개조·구제 등)도 결국 “풀어주는 사역”이었다고 연결한다.
6️⃣ 중요한 균형: “살려내는 일은 주님, 우리는 수건을 푼다”
나사로 사건(요한복음 11장 43~44절)으로 선교의 ‘역할 분담’을 강조.
⦁ 주님이 하신 일: 죽은 자를 살리심(본질적 변화, 생명 부여)
⦁ 사람의 몫: “풀어놓아 다니게 하라”(묶인 것을 풀어 회복을 돕는 순종)
⇒ 선교를 내 열심/내 능력으로 착각하면 실패한다. 성령 의지가 선교적 삶의 핵심이며, 그래서 사도행전은 “성령행전”이다.
7️⃣ 적용 권면: 가까운 곳에서부터 “풀어주는 선교사”로
⦁ 가족, 이웃, 교회 공동체 안에서부터 미움·갈등의 담을 쌓지 말고 풀어줘야 한다.
⦁ 교회가 선교적 삶을 살면 성령을 의지하게 되고, 기도와 능력이 살아나는 “살아 있는 교회”가 된다.
⦁ 결론적으로,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풀어주는 선교사”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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