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식에서 표현까지 관념을 통과하는 여정 - 이성운(동방대 교수)
Автор: 우천이오공
Загружено: 2026-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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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다시 하는 최고의 수행
나를 닦는 최고의 수행은 철학이라고 생각입니다. 동양의 선비는 말할 것도 없고, 플라톤이나 칸트와 같은 서양 철학자조차도 학문을 하면서 일정한 패턴의 생활 습관과 나와 세상에 대한 탐구를 통해 흩어짐이 없는 삶을 살았다고 보입니다.
불교의 참선, 염불, 간경도 좋은 수행이지만 나와 대상에 대한 명징한 분석과 이해와 실천 없이는 공염불이 되기 십상입니다. 내가 어디에 서 있고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고, 어떻게 행동하고 있는지를 객관적으로 파악해야 나를 바로 보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젊은 친구 가운데, 하고 싶은 것을 하려는 마음으로 해야 할 일이나 할 수 있는 일을 피하는 이들을 볼 수 있습니다.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 최상일 것입니다. 그러나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여러 조건과 상황이 되지 않으면 가능하지 않을 것입니다.
첫째는 능력일 것이고, 둘째는 경제력일 것이며, 셋째는 주변 상황일 것입니다. 능력도 경제력도 상황도 되지 않으면서 언제까지 하고 싶은 일을 하려고 기회만 엿보다가는 아무것도 할 수 없거나 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세상은 최상, 최선만이 전부는 아닐 것이고, 그렇게 사는 것이 가장 잘 사는 것이라고 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 앞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이것을 아는 것이 철학의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누구이고, 나는 지금 어디에 있고, 내가 지금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를 바로 아는 것은 학문을 할 수 있는 최소 조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본질은 외면하고 마음을 닦는다고 앉아 있는다고 해서 답은 나오지 않을 것이고, 답을 설령 얻었다고 할지라도 나의 업을 닦을 힘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각자의 처한 입장에 따라 우리는 우리가 할 일이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젊은 시절은 학업으로 실력을 쌓아 직장을 얻을 것이고, 가정을 이룬 뒤에는 가정을 잘 유지하기 위해 충실해야 할 것이며, 중년 이후가 되면 자신과 가족의 다음 세대를 위해 다시 할 일을 찾아 수행해야 할 것입니다.
이 시기에 공부해야 할 것은 사실 인생이라는 무엇인가, 인생을 위해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고, 그것의 진리는 무엇인지를 찾음으로써 나도 그렇게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공부를 하면서 자신의 공부에 이입되지 못하고 주변을 맴도는 분들이 많습니다.
법당 앞을 기웃거리거나 어쩌다가 들어갔다가도 다시 얼른 나오는 것 같은 삶에 대해서 생각해보신 적이 있습니까. 불교를 믿고 한다고 하면서 법당 주변만을 기웃거리는 것은 불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오래 절을 다니고 있다고 해도 인과를 믿지 않고 업을 믿지 않고 자신의 작은 머리로만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도 불자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불자는 인과를 믿어야 하고, 업을 믿고 개선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의심과 용심, 분심은 선을 닦는 이에게 필요한 절대적 요소이지만 그 경계를 모르고 망념 속에 있으면서 그것을 깨달음이라고 착각하면 답은 없습니다. 지금 나의 실천이 보살행인가가 중요할 것입니다.
이것을 알아차리고, 그 실상을 바로 알아서 해탈하여 무상 무아의 경지에 들어가는 것이 진정 열반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불교하는 것은, 법당에 들어가는 것은 그것의 실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법당 앞을 얼씬거리기만 하면서 끊임없이 의심하고 재고 하는 것은 수행자의 자세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법당 앞에서 얼씬거리는 데서 과감하게 법당에 들어가 정면 승부를 하는 것, 그것이 진정 불교하는 것인데, 그 방법의 하나가 교학과 그 실천 의례 등을 연구하고 실천하는 불학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시는 바웃다시여, 의심하지 마시고 불학해 봅시다. 법당 앞에서 얼씬거리지 말고, 망상을 떨쳐내고 무아의 나에서 불학해 봅시다. 그래야 바로 이 자리에서 진여를 체득하여 여여해질 것입니다. 다 깨달은 것처럼 하지만 그것은 여여함도 아니고 깨달음은 더욱 아닐 것입니다.
조그만 바람만 불어도 바로 깨지고 마는 작은 앎을 대각이나 한 양 수행한답시고 다리 틀고 앉아 깨달음 흉내를 내는 것보다 지금 여기서 나를 바로 보는 것이 더 중요할지도 모릅니다. 이때 불학은 필요합니다. 불학은 문자도 아니고 관념도 아닙니다.
나를 다시 하는 최고의 수행은 앎[知]과 삶[行]이 하나인 학문이라고 감히 말합니다.
빠라미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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