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말씀묵상_2026년 2월 18일(수)_예레미야 32장 26-44절 '이 땅에서 밭을 살 것이다'
Автор: 박주용
Загружено: 2026-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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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32:26-44절 ‘이 땅에서 밭을 살 것이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아나돗의 밭을 사게 하신 이유입니다. 예레미야는 남유다가 바빌로니아에 의해서 멸망 당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미 바빌로니아로 인해서 예루살렘이 포위당한 상황입니다. 당장 내일 예루살렘이 함락 당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상황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친척을 대신해서 아나돗의 밭을 사라고 하셨습니다. 예레미야는 혼란스러운 마음을 뒤로하고 밭을 구입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어찌하여 밭을 사라고 하셨습니까?’ 예레미야는 혹시 하나님의 계획이 수정된 것은 아닌지?, 하나님의 계획 중에서 예외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남유다의 죄악을 다시 한번 나열하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셨습니다. 남유다가 바알과 다른 신을 섬긴 일, 왕들이나 고관들이나 제사장들이나 예언자들이나 유다 사람이나 예루살렘 주민이나 가릴 것 없이 모두 온갖 죄악을 저지른 것, 성전을 더럽힌 일, 몰렉에게 자신들의 자식을 제물로 바친 일을 빠짐없이 말씀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의 심판은 변함이 없고, 예외도 없다는 단호한 표현이었습니다. 어떤 여지도 주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의지가 보였습니다. 마치 연인 사이에서 이별을 말할 때, 다른 말 없이 그동안 상대방이 저지른 잘못을 정확하게 나열한 후 ‘뭐 다른 말이 더 필요해?’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예레미야가 더는 혼란스러워하지 않도록 단호하게 남유다의 심판을 말씀하신 후, 그럼에도 아나돗 밭을 사라고 말씀하신 이유를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 이유는 반드시 다시 돌아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비록 전쟁과 기근과 염병을 만나서 바빌로니아 왕의 손에 들어간 도성이라는 치욕을 당하지만, 회복의 날이 오면 모든 백성을 이곳으로 데려와서 안전하게 살게 하겠다고 다시 한번 약속하십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단호하듯이 하나님의 회복 역시 단호함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회복은 남유다 백성의 행위로 인해서 이루어지는 회복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지는 회복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에 결정적인 말씀을 하십니다. ‘지금 이 땅을 두고 사람도 없고 짐승도 없는 황무지이며, 바빌로니아 군대의 손에 들어간 땅이라고 말하지만 바로 이 땅에서 사람들이 밭을 살 것이다. 앞으로는 베냐민 땅에서만 아니라 예루살렘의 사방과 유다의 성읍들과 산간지역의 성읍들과 평지의 성읍들과 남쪽의 성읍들에서도 사람들이 돈을 주고 밭을 사서 매매계약서를 쓰고 봉인하고 증인들을 세울 것이다.’ 무슨 의미입니까? 지금 예레미야가 밭을 산 것은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이정표와 같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들은 예레미야의 마음이 어땠을까요? 자신의 행위가 회복의 이정표가 되었다는 것에 대한 감사와 기쁨이 넘쳤을 것입니다. 예레미야가 땅을 사는 것을 지켜본 사람들의 반응은 황당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분노했을 것입니다. 예레미야의 행동이 예레미야의 예언과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껏 망한다고 하더니 자기는 밭을 산다? 미쳤거나 혹은 스스로 예언을 부정하는 행위입니다. 아마도 이런 마음을 예레미야에게 감추지 않았을 것입니다. 마구 비난하고 조롱하며 예레미야를 모욕했을 것입니다. 그런 모욕을 듣다 보면 예레미야 자신도 혼란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 질문했겠지요? 그런데 자신의 행위가 미친 행동이거나 예언을 부정하는 행위가 아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회복의 이정표라는 것입니다. 이보다 더 영광스러운 일이 있을까요? 지금 듣고 있는 비난과 조롱이 더이상 예레미야를 흔들지 못했을 것입니다. 진짜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이 약속이 70년 후에야 이루어질 약속이라는 사실입니다. 이때부터 믿음의 싸움이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의도를 알았습니다. 그렇기에 사람들에게 자신의 행동의 이유를 마음껏 설명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믿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지금까지도 아무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을 계속 확인하고 증명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번 예언은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70년 후면 예레미야가 이미 죽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금 자신을 조롱하고 비난하는 사람들 역시 죽을 가능성이 큽니다. 즉, 지금 자신이 당하는 억울함을 풀지 못할 것이 분명하고 자신 역시 이번에는 약속의 성취를 확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기에 예레미야는 확인할 수 없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더 자신을 지켜야 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는다는 것은 참 행복한 일입니다. 물론 그 과정이 어렵고 고통스러울 때도 있지만, 어떤 모양이든 쓰임 받는다는 것은 기쁨이고 감사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자신을 통해서 하시는 일을 온전히 설명할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당장 결론이 나지 않는 일이라든지, 자신이 하나님의 계획의 중간 과정 가운데 있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다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때 어떻게 자신을 지켜야 할까요?
여러 교회에서 사역을 하면서 사역의 현장이 참 다양함을 느낍니다. 어떤 교회는 정리되지 않은 밭을 갈아엎고 묵히고 기다리는 것과 같은 사역 현장이 있습니다. 어떤 교회는 영적발돋음을 위해 기폭제로 쓰임 받은 적도 있습니다. 다만, 열매를 수확하는 일은 저의 역할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마치 사역을 하다가 만 것처럼 멈출 때도 있었습니다. 어떤 교회는 이미 앞에서 어려운 일들을 다 마치고 수확만 하면 돼서 열심히 열매를 수확하고 수확의 기쁨과 감사를 누리며 즐기는 교회도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힘든 사역지가 밭을 갈아엎고 묵히고 기다리는 현장입니다. 정말 맨 땅에 헤딩입니다. 때로는 그곳이 늪과 같습니다. 아무리 말씀을 전하고 헌신을 해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가끔은 ‘그런 곳을 다시 만나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들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이 저를 위로해 주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약속은 이루어진다.’ 사역지의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을 확신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혹은 반드시 내가 열매를 보고 싶다는 욕심이 문제입니다.
일상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복음을 전하고 믿음으로 살아도 변하지 않는 곳이 있습니다. 돌아오는 반응은 조롱과 비웃음입니다. 급기야는 선한 의도를 이용하려는 속임들이 보일 때도 있습니다. 그런 곳에서 어떻게 자신을 지키고 있으십니까?
다시 마음을 다잡으며 고백합니다. ‘사명이 주어지는 것이 은혜입니다. 저를 사용해 주소서.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이 은혜입니다. 주님만 영광 받으소서. 내가 확인하지 못해도 괜찮으니, 반드시 약속을 이루어주옵소서.’ 오늘도 하나님의 일에 쓰임 받는 날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과 상관없이 바쁘다가 그냥 끝나는 날이 되지 않도록 자신을 점검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루실 약속을 소망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날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영광이 곧 우리의 영광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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