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기도회] 복음을 전하는 이유 (사도행전 14장 8~18절)
Автор: 예수쟁이 이집사
Загружено: 2026-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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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복음을 전하는 이유
📖 성경 : 사도행전 14장 8~18절
👨💼 설교 : 김운성 목사
📅 2026년 2월 18일 #영락교회 @youngnakchurch
이 설교는 "세상은 능력 앞에 무릎 꿇게 하지만, 복음은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 앞에 자원하여 엎드리게 하며, 교회도 능력보다 사랑을 중심에 둘 때 건강해진다."라고 한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1️⃣ 설교의 출발점: 세상은 어디에나 고통이 있다
설교자는 사도행전에서 바울과 바나바가 루스드라에서 만난 태어날 때부터 걷지 못한 사람을 통해, 예루살렘 성전 미문 앞의 앉은뱅이와 같은 고통이 세상 어디에나 존재한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 예루살렘에도 고통이 있고, 먼 이방 땅 루스드라에도 고통이 있다.
⦁ 인종, 지역, 신분과 관계없이 인간은 모두 고통과 죽음 아래 놓여 있다.
⦁ 교회 안에서도 많은 성도들의 별세 소식이 이어지는 현실은, 우리 모두가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존재임을 보여 준다.
그래서 설교자는 성도들에게 예배의 자리를 가볍게 여기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예배는 당연한 습관이 아니라, 어쩌면 내가 드리는 마지막 예배일 수도 있기 때문에 깨어서, 정성을 다해 드려야 하는 자리라는 것입니다.
2️⃣ 인간 인생의 가장 소중한 일: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
설교자는 인생을 돌아보며,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잠시 형편이 나아지고 건강하고 일이 잘될 때가 있어도 그것은 길지 않다고 말합니다.
⦁ 돈이 좀 생기고
⦁ 일이 잘 풀리고
⦁ 건강이 괜찮은 시기가 있어도
그것은 인생 전체로 보면 아주 짧은 순간일 뿐이다.
따라서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본질적인 일은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사는 것이라고 정리합니다.
3️⃣ 루스드라의 오해: 사람들은 능력을 보면 곧 신격화한다
루스드라에서 걷지 못하던 사람이 고침을 받자, 사람들은 바울과 바나바를 신으로 여깁니다.
⦁ 바나바는 제우스
⦁ 바울은 헤르메스
라고 부르며 제사를 드리려 합니다.
설교자는 여기서 당시 사람들이 왜 그런 반응을 했는지 설명합니다.
바울이 왜 헤르메스로 불렸는가
헤르메스는 그리스 신화에서
⦁ 나그네를 인도하는 신,
⦁ 길을 알려 주는 신,
⦁ 감춰진 비밀을 설명해 주는 신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바울이 하나님의 비밀, 복음의 길, 생명의 길을 설명해 주는 역할을 했기 때문에, 사람들의 눈에는 바울이 마치 그런 존재처럼 보였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설교자는 이 점을 연결해, 성도들도 말씀을 읽을 때 성령의 조명 속에서 하나님의 숨겨진 뜻을 깨닫는 은혜가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 성경은 그냥 글자로만 읽으면 안 된다.
⦁ 성령께서 깨닫게 하실 때, 평범한 구절 속에서도 하나님의 깊은 뜻이 드러난다.
⦁ 깨달은 사람은 깨닫지 못한 사람에게 그것을 설명해 주는 사명이 있다.
4️⃣ 문제의 핵심: 인간은 왜 누군가를 신처럼 섬기는가
루스드라 사람들은 바울과 바나바에게서 엄청난 능력을 보았고, 그 능력에 압도되어 그들을 신처럼 섬기려 했습니다.
설교자는 여기서 매우 중요한 통찰을 제시합니다.
사람들이 신격화하는 기준은 “사랑”이 아니라 “능력”이다
사람들은 보통 다음과 같은 힘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 돈의 힘
⦁ 권력의 힘
⦁ 지식의 힘
⦁ 외모의 힘
즉, 인간은 자기보다 강한 능력을 가진 존재를 보면 그 앞에 굴복하고, 때로는 그것을 신처럼 여깁니다.
설교자는 이것이 고대 왕들의 신격화, 현대 사회의 물질숭배, 권력숭배, 심지어 북한의 우상화 체제까지 이어진다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단호하게 말합니다.
➡ 능력이 중심이 되는 곳에는 생명이 없고, 비극과 죽음만 있을 뿐이다.
5️⃣ 기독교의 본질: 능력 종교가 아니라 사랑의 종교
이 설교의 핵심은 여기서 분명해집니다.
우리는 능력에 무릎 꿇는 사람이 아니라 사랑에 무릎 꿇는 사람이어야 한다
하나님은 가장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능력으로 인간을 억눌러 굴복시키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 능력을 뒤로 감추시고
⦁ 연약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 우리를 안아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구원 방식
하나님은 세상을 능력으로 정복하지 않으시고
사랑으로 구원하셨다는 것이 설교자의 강조점입니다.
⦁ 우리가 주님 앞에 엎드리는 이유는 그분의 힘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 그 사랑에 감격하기 때문입니다.
6️⃣ 사랑의 예: 베드로와 탕자의 비유
설교자는 이를 설명하기 위해 두 장면을 제시합니다.
⑴ 베드로 회복
예수님은 자신을 부인한 베드로를 다시 회복시키실 때
⦁ 윽박지르지 않으셨고
⦁ 권위를 과시하지 않으셨고
⦁ 사랑으로 다가오셨습니다.
숯불을 피우고, 떡과 생선을 구워 먹이시며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즉, 예수님은 능력으로 굴복시키는 분이 아니라 사랑으로 돌아오게 하시는 분입니다.
⑵ 탕자의 비유
탕자가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 재산의 힘으로 누르지 않았고
⦁ 도덕적 우위로 굴복시키지 않았고
⦁ 달려가 끌어안고 입 맞추었습니다.
탕자를 변화시킨 것은 아버지의 재력도, 권위도 아니라 사랑이었습니다.
7️⃣ 바울과 바나바의 진짜 목적
사람들이 자신들을 신으로 숭배하려 하자, 바울과 바나바는 옷을 찢으며 강하게 만류합니다.
그 이유는 분명합니다.
그들이 루스드라까지 온 목적은
자기들이 높아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들을 살아계신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기 위해서였기 때문입니다.
설교의 중심 구절은 이것입니다.
➡ “우리가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런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시고 살아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함이라.”
즉 바울의 사역을 움직인 원동력은 능력이 아니라,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사랑이었습니다.
그가 험한 길을 가고 핍박을 견디며 복음을 전한 이유도
오직 사람들을 구원으로 인도하려는 사랑 때문이었다는 것입니다.
8️⃣ 오늘의 교회에 대한 적용
설교자는 이 본문을 오늘 한국교회에 직접 연결합니다.
오늘 교회가 조심해야 할 것
교회가 사람을 평가할 때
⦁ 능력 중심,
⦁ 학력 중심,
⦁ 재정 능력 중심,
⦁ 일 처리 능력 중심으로 판단하면 안 된다고 말합니다.
교회에서 귀하게 여겨야 할 사람은
사랑이 많은 사람입니다.
⦁ 몸이 약해도
⦁ 조건이 부족해도
⦁ 세상적 능력이 크지 않아도
주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고 영혼을 사랑하는 사람이 진짜 귀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목회자도 마찬가지
목회자 역시 능력으로 판단할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진실로
⦁ 주님을 사랑하는가
⦁ 성도를 사랑하는가
⦁ 교회를 사랑하는가
이 기준으로 보아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사랑 없이 능력만으로 섬기면 삯꾼 목자가 될 뿐이라는 경고도 덧붙입니다.
9️⃣ 결론
이 설교의 결론은 매우 선명합니다.
⦁ 세상은 능력을 숭배한다.
⦁ 능력 중심의 세계에서는 사람이 사람 위에 군림하고, 결국 비극과 죽음이 생긴다.
⦁ 그러나 기독교는 능력의 종교가 아니라 사랑의 종교이다.
⦁ 하나님은 사랑으로 우리를 구원하셨고,
⦁ 바울도 그 사랑에 사로잡혀 사랑으로 복음을 전했다.
⦁ 그러므로 성도는 능력을 부러워하는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 닮은 사랑을 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설교자는 마지막에 성도들에게 이렇게 권면합니다.
⦁ 능력 있는 사람을 지나치게 부러워하지 말라.
⦁ 그보다 “내게 저런 능력은 없어도, 예수님 닮은 사랑을 더 주옵소서”라고 기도하라.
⦁ 가장 큰 은사는 사랑이다.
⦁ 교회가 사랑 중심의 공동체가 될 때, 하나님만 영광 받으신다.
🎬 영상출처 : • 2026년 2월 18일 "복음을 전하는 이유(사도행전 14:8~18)" 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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