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20장 9-19절 포도원농부 비유 260314 원주희 목사
Автор: Wonjuhee Won
Загружено: 2026-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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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20장 9-19절 포도원농부 비유 260314 원주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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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수님의 극단적인 설교
오늘 주님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우리를 향해 아주 파격적이고도 날카로운 말씀을 던지십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 마지막 시기에 성전이 무너질 것을 예언하시며 들려주신 이 ‘포도원 농부의 비유’는, 당시 종교 지도자들뿐만 아니라 오늘을 사는 우리 가슴을 서늘하게 만드는 말씀입니다.
비유를 들은 사람들의 반응을 보십시오. 보통 은혜로운 말씀이 선포되면 “아멘! 할렐루야!” 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사람들은 “그렇게 되지 말지어다!”라며 소리를 높였습니다. 말하자면 “노맨(No-men)!”을 외친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내 인생의 판이 뒤집어지고, 내가 주인 되어 누려온 체제가 바뀐다는 소리가 안정된 삶을 살던 그들에게는 너무나 곤욕스러웠기 때문입니다.
2. 포도원농부 비유 개괄
비유의 내용을 다시 한번 묵상해 봅시다. 어떤 주인이 포도원을 잘 만들어 농부들에게 세를 주고 먼 타국으로 떠났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라는 귀한 선민을 택하셔서 하나님의 나라를 일굴 기회를 맡기신 구약 역사의 축소판입니다. 때가 되어 주인이 소출의 얼마를 받으려고 종을 보냅니다. 마치 우리가 건물 세를 주고 월세가 들어왔나 통장을 확인하는 것처럼 당연한 권리입니다.
그런데 농부들의 반응이 기가 막힙니다. 첫 번째 종을 때려 보내고, 두 번째 종은 능욕하며 내쫓고, 세 번째 종은 아예 상하게 해서 던져버렸습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보내어 “이제 이만큼 자랐으니 복음의 열매를 내놓으라”고, “교회 됨의 본질을 좀 회복하라”고 끊임없이 기회를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자기 욕심에 눈이 멀어 그 모든 기회를 발로 차버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묻고 계십니다. “내가 너에게 준 그 많은 은혜의 소출, 그 열매는 지금 어디에 있느냐?”
3. '주인 의식'과 '주인 노릇'을 착각하지 마십시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섬길 때 반드시 기억해야 할 문장이 있습니다. “주인 의식은 갖되, 주인 노릇은 하지 마라!”
여러분, 인생을 살 때 ‘처삼촌 벌초하듯이’ 남의 일처럼 대충 살면 안 됩니다. 내 인생, 내 교회라는 주체적인 ‘주인 의식’을 가지고 열심을 다해야 합니다. 교회를 너무나 사랑하는 그 마음, 얼마나 귀합니까? 그런데 문제는 내가 진짜 주인 행세를 하려 들 때 발생합니다. 이 교회의 주인이 누구십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가정의 주인, 여러분 사업장의 진정한 주관자가 누구입니까? 바로 주님이십니다.
주님은 때로 우리에게 주권을 행사하시며 사인을 주십니다. “너 이제 이만큼 자랐으니, 이 일에 헌신 좀 해보지 않겠니?” 선교지로 가라는 마음을 주시기도 하고, 죽어가는 한 영혼을 품으라는 부담을 주시기도 합니다. 그때 내 주권을 주님께 양보하는 것, 그것이 바로 ‘월세’를 내는 믿음입니다. 내가 주인 노릇 하려 들면 주님의 종을 때려 보내는 악한 농부와 다를 바 없음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4. 51주와 1주의 비밀: 당신은 주인을 기억하십니까?
어느 교회의 주차장 예화가 참 깊은 울림을 줍니다. 교회 옆 공터를 주일만 좀 쓰게 해달라고 주인에게 몇 년을 매달렸더니, 주인이 딱 한 가지 조건을 걸고 허락했습니다. “1년 52주 중에 51주만 쓰시오. 한 주는 절대 안 됩니다.”
처음엔 좋다고 썼는데, 약속한 그 한 주가 되자 교인들이 난리가 났습니다. 골목에 주차하다 딱지 떼이고 난처해지니까 목사님께 항의를 합니다. “목사님, 그 한 주가 뭐라고 아까워서 안 준답니까? 땅이 텅텅 비어 있는데 너무한 것 아닙니까?” 목사님이 주인을 찾아가 이유를 물었더니 주인의 대답이 명언입니다. “52주 내내 쓰게 하면 당신들이 그 땅을 자기 땅인 줄 압니다. 딱 한 주를 못 써봐야 ‘아, 땅 주인이 따로 있구나!’ 하고 깨닫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 인생의 주관자이십니다! 그분이 주인임을 잊지 않게 하시려고 우리 삶에 몇 가지 장치를 두셨습니다.
첫째는 십일조입니다.
내게 있는 열 개가 다 주님의 것이지만, 그중 하나를 구별해 드림으로써 “주님, 이 모든 물질의 주인은 당신이십니다. 나는 주님과 동역할 뿐입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 물질의 주권을 인정할 때, 하나님은 나머지 아홉을 지켜주시는 풍성한 은혜를 허락하십니다.
둘째는 **성일(주일)**입니다.
일주일의 하루를 ‘내 마음대로 살지 않는 날’로 못 박아 두는 것입니다. 흑산도 같은 관광지는 주일이 대목이라 수요일을 주일처럼 성대하게 지키는 교회도 있다고 합니다. 어떤 형식이든 한 날을 떼어 주님께 드리는 것은, 내 모든 시간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선포하는 위대한 신앙 고백입니다.
5. 촛대를 옮기시는 하나님, 그 두려운 경고
비유의 결말은 비극적입니다. 주인이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아들을 보냈지만, 농부들은 “저놈이 상속자니 죽이고 유산을 뺏자”며 아들을 죽여버립니다. 내 인생의 등기부등본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지우고 내 이름을 써넣겠다는 무서운 탐욕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주권을 인정하지 않고 끝까지 주인 노릇을 고집하면 주님은 ‘촛대’를 옮기십니다. 한때 찬란한 기독교 문명을 꽃피웠던 소아시아와 중동 땅이 왜 지금 이슬람의 땅이 되었습니까? 당시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의 복을 받아 거부가 되었으면서도, 소작인들에게 갑질을 하고 덕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이슬람이 “땅은 알라의 것인데 왜 너희가 다 먹느냐”고 외칠 때 민심이 다 넘어갔습니다. 교회가 영혼 구원이라는 본질을 잃고 세상의 걸림돌이 되면, 주님은 단호하게 그 촛대를 옮기실 수도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두려움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6. 교회의 사명: “예배, 교육, 교제, 선교, 봉사!”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교회가 되어야 합니까? 예루살렘 교회는 2만 명이 모이는 대단한 교회였습니다. 성령의 역사와 신유의 은사가 넘쳤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 교회를 흩으셨습니다. 왜일까요? 교회의 5가지 사명을 기억하십시오. “예배, 교육, 교제, 선교, 봉사!”
예루살렘 교회는 내부적인 ‘예배, 교육, 교제, 봉사’는 너무나 잘했습니다. 자기들끼리는 유무상통하며 행복했습니다. 하지만 밖으로 나가는 ‘선교’를 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주님은 강제로 촛대를 옮기어 이방 선교의 문을 여셨습니다.
우리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의 내부가 예배와 교육 진정한 교제를 통해 신앙의 본질을 든든히 해야 합니다. 하지만 거기서 멈추면 안 됩니다. 그 은혜를 가지고 지역사회를 섬기는 봉사가 결국 ‘영혼 구원의 선교 열매’로 이어져야 합니다. 이 다섯 가지가 조화롭게 움직일 때, 주님은 이 제단에 풍성한 복을 채우시고 우리를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 불러주실 것입니다.
7. 결단: 이제 주권의 자리를 내어드리십시오
말씀을 맺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인생 포도원에서 주인은 누구입니까? 주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세를 요구하십니다. 그것은 우리를 괴롭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진짜 주인’을 기억함으로써 더 큰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하시려는 사랑의 간섭입니다. 나의 시간, 나의 물질, 나의 소중한 자녀까지도 주님의 주권 앞에 온전히 올려드리십시오. 주님께 주권을 돌려드릴 때, 비로소 우리의 인생 포도원에는 시들지 않는 생명 나무의 열매가 맺힐 것입니다. 여러분이 감당하는 그 직분, 그 사명 위에서 주님의 주권을 온전히 높여드림으로, 있는 자는 받아 풍성케 되는 갑절의 복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침 기도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 우리는 포도원 농부들의 모습을 보며 거울 앞에 선 듯 우리의 부끄러운 모습을 발견합니다. 내가 주인인 양 휘둘렀던 시간들, 내 것인 줄 알고 움켜쥐었던 물질들을 회개합니다. 주님, 우리가 미련하여 주님의 경고를 듣지 못할 때 주의 자비로 우리를 일깨워 주옵소서. 우리 내남제일교회가 교회안의 사역과 밖으로 뻗어가는 사역이 균형을 이루는 복된 교회가 되게 하시고, 모든 성도가 인생의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며 나아가게 하옵소서. 촛대를 옮기지 않으시고 끝까지 우리를 통해 영혼 구원의 역사를 이루실 주님을 찬양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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