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쓸모 불가능을 극복한 네 가지 교훈 /인생이 안 풀릴 때, 역사 속 4인의 놀라운 반전 스토리
Автор: 밑바닥부터 성공으로 가기까지 과정
Загружено: 2025-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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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안 풀릴 때, 역사 속 4인의 놀라운 반전 스토리
서론: 시작하는 글
‘나는 왜 재능이 없을까?’ ‘왜 나만 이렇게 힘들지?’ 인생이 뜻대로 풀리지 않는다고 느껴질 때, 남들과 비교하며 좌절할 때가 있습니다. 이런 막막한 감정은 비단 우리만의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위인이라고 부르는 역사 속 인물들 역시 똑같은 좌절과 고통의 순간을 겪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놀라운 교훈과 용기를 줍니다.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큰별쌤’으로 유명한 최태성 작가의 『역사의 쓸모』는 우리가 몰랐던 역사 속 인물들의 감동적이고 때로는 충격적인 진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 글에서는 책에 소개된 4명의 인물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뜻밖의 인생 교훈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본문: 역사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인생의 쓸모
많은 사람들이 조선 시대 ‘독서왕’하면 세종대왕을 떠올리지만, 여기 또 한 명의 독서왕이 있습니다. 바로 김득신입니다. 하지만 그는 뛰어난 천재가 아니라, 오히려 머리가 나쁘기로 소문난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사마천의 ‘백이열전’을 무려 11만 3천 번이나 읽었습니다. 얼마나 기억력이 나빴냐면, 어느 날 길을 가다 한 집에서 ‘백이열전’ 낭독 소리를 듣고도 무슨 글인지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그가 읽은 횟수가 자그마치 11만 번이 넘었는데도 말입니다. 결국 글을 모르는 노비가 “나리께서 아침저녁으로 읽으시던 그 백이열전 첫 장의 첫 문장 아닙니까?”라고 알려줄 정도였습니다. 심지어 자신이 직접 쓴 시를 우연히 다시 보고는 너무나 훌륭하다며 감탄했지만, 정작 자신이 쓴 시인 줄은 몰랐다는 일화도 있습니다. 생각이 안 날 때마다 수염을 꼬아 뽑는 버릇 때문에 수염이 하나도 없었다는 이야기는 그의 고뇌를 짐작하게 합니다.
총명하지 않다는 이유로 그는 집안의 골칫거리였고, 아버지는 임종 직전 “이제 공부는 그만하거라”라는 유언을 남길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김득신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실패 끝에 39세에 겨우 1차 시험인 소과(小科)에 합격했고, 그로부터 20년을 더 노력하여 마침내 59세의 나이에 최종 시험인 대과(大科)에 급제하는 ‘인간 승리’를 이뤄냅니다.
그는 훗날 자신의 묘비명을 직접 썼습니다. 그 글은 오늘날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줍니다.
나보다 머리 나쁜 사람이 있는가 아마 없을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나를 손가락질 한다는 건 알고 있지만 나는 한 번도 스스로에게 너는 못해라고 한계를 정한 적이 없다. 혹시 당신이 살다가 재주 하나 없다는 생각이 든다면 나처럼 한 가지 일에 정성을 다해 보아라. 나보다 실을 빨리 쓰는 사람도 있었고 나보다 글을 빨리 배운 사람도 있었고 나보다 시험에 빨리 합격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들은 나와 같이 이름을 남기지 못했다.
김득신의 이야기는 타고난 재능이 부족하다고 느끼거나, 남과 비교하며 스스로를 탓하는 우리에게 노력의 가치가 얼마나 위대한지를 보여줍니다.
화려한 한복과 모자, 어우동 하면 흔히 기생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그녀는 뼈대 있는 양반 가문의 딸이었으며, 세종의 형인 효령대군의 손자와 결혼한 왕실의 일원, 즉 ‘로열패밀리’였습니다.
사건의 시작은 남편 이동이 기생과 바람이 나 그녀를 버리면서부터였습니다. 소박을 맞은 어우동은 이후 17명의 남자와 간통 스캔들을 일으켰고, 이 사건은 『성종실록』에 기록될 만큼 조선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이 스캔들이 단순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었던 이유는 연루된 인물들 때문이었습니다. 그들 중에는 당시 병조판서(오늘날의 국방부 장관)와 대사헌(감사원장) 같은 최고위급 관료들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결과는 참혹할 정도로 불평등했습니다. 스캔들에 연루된 남성들은 대부분 벌금이나 잠시 귀향을 가는 등 가벼운 처벌을 받고 관직을 유지했지만, 어우동은 홀로 교수형을 당했습니다. 이는 당시의 극심한 남녀 차별을 명백히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당시 시대상은 성종의 어머니 인수대비가 쓴 여성 지침서 『내훈』에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이 책에는 “남편에게 채찍질을 당해도 원망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 실려 있을 정도로 가부장적인 사회였습니다. 하지만 이런 차별이 당연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불과 그 이전 시대인 고려에서는 딸과 아들이 재산을 동등하게 상속받았고 딸도 제사를 지낼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어우동을 시대의 풍기를 문란하게 한 요부로만 기억해왔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이야기는 우리가 역사를 얼마나 오해하고 있었는지, 그리고 억울하게 희생된 한 여성의 진실을 아는 것이 왜 중요한지를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정약용은 의학, 법학, 지리학, 언어학 등 다방면에 능통하고 거중기를 발명한, ‘조선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라 불릴 만한 천재였습니다. 정조의 총애를 받으며 최고의 인재로 인정받았지만, 그에게는 ‘천주교 집안’이라는 유일한 약점이 있었습니다.
반대파의 압박이 거세지자, 그를 아꼈던 정조는 “내 보름 뒤에 너를 다시 부르마”라는 약속과 함께 잠시 그를 관직에서 물러나게 합니다. 하지만 운명은 가혹했습니다. 정조는 약속한 날 바로 전날 세상을 떠났고, 정약용을 지켜줄 방패는 사라졌습니다. 결국 그는 18년이라는 기나긴 유배 생활을 시작하게 됩니다.
모든 것을 잃은 절망적인 상황이었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유배지에서 하루 종일 글을 쓰고 책을 읽는 데 몰두했고, 너무 오랫동안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있어 복숭아뼈에 세 번이나 구멍이 났다고 합니다. 그 18년 동안 그는 무려 500권이 넘는 책을 집필했습니다.
그가 왜 그토록 기록에 집착했을까요? 만약 그가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다면, 역사는 그를 ‘죄인 정약용’으로만 기억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정약용은 스스로를 ‘실학을 집대성한 위대한 학자’로 역사에 남기고자 했습니다. 그는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역사를 스스로 써 내려간 것입니다. 유배지에서도 자녀들에게 편지를 보내 “우리 집안은 폐족(죄를 지어 벼슬길이 막힌 가문)이 되었지만, 너희는 청족(맑고 고결한 선비 가문)으로 살아야 한다”며 독서를 게을리하지 말라고 가르쳤던 그의 모습은 꺾이지 않는 정신을 보여줍니다.
정약용의 삶은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주저앉지 않고, 자신의 가치와 이야기를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증명합니다.
‘대동법의 아버지’ 김육은 평생을 하나의 법을 위해 바친 인물입니다. 당시 백성을 가장 괴롭혔던 세금은 지역 특산물을 바치는 ‘공납’이었습니다. 제주도에서는 할당된 귤을 채우기 위해 관리들이 나무에 달린 ‘콩알만 한 귤의 숫자’까지 세어갔고, 이를 감당 못한 백성들은 귤나무에 뜨거운 물을 부어 죽여버릴 정도였습니다. 중간에서는 ‘방납업자’들이 사또와 결탁해 10배의 폭리를 취했습니다. 놀랍게도, 우리가 흔히 쓰는 ‘인정(人情)’이라는 단어의 시작은 바로 이 방납업자가 사또에게 바치던 ‘뇌물’이었습니다.
김육은 정치적 소용돌이에 휘말려 숯장사를 하며 생계를 유지하던 시절, 이 고통을 직접 목격했습니다. 가평에서 서울까지 왕복 160km의 길을 걸으며 숯을 팔았던 그의 발에는 백성들의 고통이 그대로 새겨졌습니다. 이때부터 그는 공납 대신 토지 면적에 따라 쌀로 세금을 내는 ‘대동법’을 추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대동법은 토지가 많은 양반 지주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하는 제도였기에 기득권층의 엄청난 반대에 부딪혔습니다.
그럼에도 김육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평생에 걸쳐 상소를 올리며 대동법 확대를 위해 싸웠고, 그가 시작한 싸움은 100년이 지나서야 전국적으로 대동법이 시행되는 결실을 보았습니다. 그는 죽음을 앞두고 올린 유언 상소에서조차 “제가 죽으면 대동법이 흐지부지될까 두렵습니다”라며 끝까지 백성을 걱정했습니다.
모두가 자신의 이익 때문에 반대할 때, 백성이라는 대의를 위해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간 김육의 삶은 진정한 용기가 무엇인지 보여줍니다.
결론: 맺음말
머리가 나쁘다는 평가에도 59세에 꿈을 이룬 김득신, 시대의 희생양이었던 어우동, 18년의 유배를 500권의 책으로 바꾼 정약용, 100년간의 싸움을 시작한 김육. 이들의 삶은 우리에게 ‘역사의 쓸모’가 무엇인지 온몸으로 증명합니다. 그들의 이야기는 단순히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건네는 깊은 위로와 지혜입니다.
이 4명의 이야기 중, 지금 당신에게 가장 큰 울림을 주는 것은 누구의 삶인가요? 그리고 당신은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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