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1주일 복음 특강] 모든 자궁은 광야다: 이 세상도 하느님의 자궁이다 I 전삼용 요셉 신부(수원교구조원동 주교좌성당주임) 2026.2.15 천주교/신부님강의/가톨릭스튜디오
Автор: 가톨릭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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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1주일(마태 4,1-11) - 모든 자궁은 광야다: 이 세상도 하느님의 자궁이다
교우 여러분, 오늘은 사순 제1주일입니다. 오늘 복음의 첫 장면은 사실 좀 당혹스럽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하느님 아버지의 그 뜨거운 고백을 듣자마자, 성령께서는 그분을 위로의 장소가 아니라 광야로 내몰아 버리십니다. 왜일까요? 이제 막 하느님의 자녀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받은 예수님께, 광야는 그 신성을 단련하고 완성해야 하는 거룩한 자궁이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모든 자궁은 광야입니다. 태아에게 어머니의 태중은 마냥 편안한 침대가 아닙니다. 좁고, 어둡고, 때로는 숨이 막히는 압박을 견뎌야 하는 고립된 공간이죠. 하지만 그곳에서 수정란은 이전의 모습을 완전히 벗고 부모의 형상을 닮은 인간으로 재창조됩니다. 성령은 마치 거룩한 정자와 같습니다. 우리 영혼에 침투하여 우리의 낡은 인간 본성을 뒤흔들고, 하느님의 자녀라는 새로운 생명을 잉태시킵니다. 그래서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이제 그 자궁, 즉 광야 안으로 들어왔다는 뜻이 됩니다.
그런데 왜 이 세상이 자궁일 수밖에 없을까요? 우리가 저절로 존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인터넷에서 어떤 자매님의 글을 읽었습니다. 이 자매님이 지인의 일을 도와주러 갔다가 영문도 모르고 무당집에 끌려갔답니다. 그런데 그 무당이 겁을 주더라는 거예요. "너 신내림 안 받으면 재수 없는 일만 생길 거다. 절에 가든지 무당이 돼라. 성당이나 교회 가면 너 반드시 병신 된다!" 참 기가 막히죠? 이 자매님은 무시하려고 해도 그 말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아 고통스러워했습니다.
우리가 이런 공포 마케팅에 속는 이유는 내가 어디서 에너지를 받아 사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이 자궁임을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탯줄을 통해 오는 에너지를 직접 체험하는 것입니다. 아기가 자기 힘으로 크는 게 아니라 탯줄로 엄마의 피를 받아 살듯, 우리 역시 기도를 통해 하느님의 에너지를 받아야 합니다.
제 형님은 성당에 안 다녔지만, 매일 밤 가위에 눌려 고생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자기 전에 성호를 긋고 자라고 했죠. 형님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기도였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성호를 긋고 잔 날은 절대 가위에 눌리지 않았습니다. 기도의 에너지가 실제로 작동한다는 걸 작은 체험으로 알게 된 거죠.
이 세상이 자궁이라면, 자궁 안에서는 반드시 치러야 할 전쟁이 있습니다. 바로 본성의 교체를 위한 이전 본성과의 처절한 싸움입니다. 뱀이 에덴동산에서 하와를 유혹했을 때 썼던 수법은 오늘 광야에서 사탄이 던진 세 가지 유혹과 똑같습니다. 먹음직하고, 소담스러우며, 슬기롭게 해 줄 것 같은 유혹, 즉 소유욕, 성욕, 지배욕입니다. 뱀은 인간을 하느님의 본성에서 동물의 본성으로 타락시켰습니다. 자궁 안에서 태아가 꼬리를 없애고 인간의 형태를 갖추듯, 우리는 광야에서 이 짐승의 흔적을 도려내야 합니다.
만약 이전 본성과의 싸움을 하지 않는다면, 아직 성령께서 오시지 않은 것입니다. 난자가 정자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입니다. 보모를 만나지 못한 것입니다. 세례 받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면 이 세상을 사는 이유가 없어집니다. 이는 마치 영화 '매트릭스'의 배터리처럼 욕망의 노예로 살다 죽는 삶과 같습니다. 사는 게 아닙니다. 1991년 우크라이나에서 발견된 옥사나 말라야의 사례는 정말 끔찍합니다. 인간의 자궁(가정) 안에서 본성을 바꾸는 과정을 겪지 못해 개가 되어버린 그녀처럼, 우리도 본성을 초월하여 깨어나지 못한다면 이 자궁 같은 세상에서 본성을 초월하는 일만이 유일하게 가치 있는 투쟁입니다.
이 세상을 하나의 자궁이요, 광야로 여기게 되었다면 세례를 받은 것입니다. 그들은 모든 것을 자신의 욕망과 싸워 이기는 훈련의 시기로 봅니다. 우리 나라의 위대한 동정 순교자 부부, 유중철 요한과 이순이 루갈다의 삶은 그 절정을 보여줍니다. 두 분은 하느님 나라를 향한 열망으로 동정 부부로 살기로 서약했습니다. 이순이 루갈다 성녀가 1801년 신유박해 때 보낸 『옥중 서한』의 기록은 정말 절절합니다. "어머니, 저희는 4년 동안 한 방에서 오누이처럼 지냈습니다. 육신의 욕망이 일어날 때마다 십자가를 부여잡고 피눈물을 흘리며 울었습니다. 어떤 때는 하룻밤에 열 번도 넘게 유혹을 이겨내야 했으니, 이것은 하느님의 도우심이 아니면 결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성녀는 이 지독한 싸움을 광야의 진통으로 여겼고, 그 결과 하느님의 자녀라는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날 수 있었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고통스럽고 유혹이 많다면, 그것은 아주 좋은 징조입니다. 아기가 걸음마를 연습하다 수천 번 넘어지는 것과 같습니다. 넘어진다는 것은 걷고 싶다는 의지가 있다는 뜻입니다. 싸우고 있다는 것은 여러분이 이제 막 인간이라는 낮은 본성에서 하느님이라는 고귀한 정체성으로 탈출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니 나의 배꼽에 탯줄이 연결되어 있는지 살펴보십시오. 이 세상이 아닌 천상에서 오는 힘을 체험해보십시오. 그러기 위해서는 기도해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광야로 나아가 자신과 싸워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나비의 고치를 가위로 미리 잘라주면 그 나비는 영영 날지 못하고 죽습니다. 고치를 빠져나오려는 그 처절한 몸부림이 나비의 날개를 근육질로 만드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사순 시기도 이와 같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괴롭히려는 게 아니라, 하늘을 날 수 있는 하느님의 자녀로 만드시려고 광야의 진통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 존재가 아니라 새로운 세상으로 태어나기 위해 준비하는 자궁 속에 있음을 깨닫는 것, 그것이 세례와 성령의 참된 의미입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539항은 이렇게 가르칩니다.
"예수님은 아담이 낙원에서 실패했던 그 유혹을 광야에서 이기심으로써, 인류에게 새로운 본성의 길을 열어주셨다."
광야는 죽음의 땅이 아니라 생명이 빚어지는 하느님의 자궁입니다. 기도와 자선과 단식이라는 수술 칼을 들고 여러분 안의 짐승을 도려내십시오. 하느님 아버지께서 탯줄을 통해 여러분의 산고를 함께 겪으며 응원하고 계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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