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강해, 억울한 피가 땅에 심판을 가져온다(인내로 자기 영혼을 얻는다)
Автор: 레올람토라
Загружено: 2025-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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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믿음으로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한다
우리는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 이것은 아브라함에게도 적용되었고, 예슈아께서도 믿음으로 의롭게 됨을 확증하셨다. 믿음이 있어야 하나님의 모든 명령을 온전히 따를 수 있으며, 예슈아께서 보여주신 믿음은 목숨까지도 내려놓는 순종이었다. 또한 예슈아께서 세우신 새 언약도 믿음으로 끝까지 승리한 자들에게 유효하기 때문에,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 진리이다. 예슈아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는 끝까지 믿음으로 서서, 영광으로 부활하게 될 그 날을 소망하며 즐거워할 수 있는 것이다.
2 그 날 후로는 새로운 길이 생긴다
예슈아께서는 죄를 위하여 한 번의 영원한 제사를 드리셨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사실상 새로운 시작이었다. 왜냐하면 모든 원수들이 예슈아의 발등상에 엎드려 굴복할 때까지 기다리셔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도 세상에 하나님의 원수들이 활개 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그 날이 오면 모든 원수들은 예슈아 앞에 무릎 꿇게 될 것이다.
그 날이 지난 후에 새 언약이 온전히 성취된다. 곧 백보좌 심판 이후를 가리킨다. 그때는 더 이상 원수도 존재하지 않고, 여호와께서 그분의 법을 우리의 마음과 생각에 새겨 주실 것이다. 우리는 더 이상 죄를 짓지 않는, 영원히 거룩한 존재로 서게 되며, 여호와께서는 우리의 불법을 다시는 기억하지 않으실 것이다. 이미 온전히 사하셨기에 제사도 더 이상 필요 없다. 그 제사를 예슈아께서 단번에 드리셨기 때문이다.
그 날에는 새로운 생명의 길이 열려, 우리는 예슈아의 육체를 통하여 여호와께 담대히 나아갈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이 날이 아직 완전히 성취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금도 모든 원수가 굴복하기를 기다리는 중이다(히10:12-20).
3 환난 중에도 주께 영광을 돌린다
우리는 여전히 기다림의 때를 살고 있다. 하나님의 원수들이 우리를 핍박하고 환란을 가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우리는 기뻐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 날이 오면 모든 원수는 패망하고, 공의로운 심판을 받아 영원히 멸망할 것이기 때문이다. 환란은 결코 헛되지 않다. 우리는 환란을 통하여 인내를 배우고, 믿음이 단련되며, 결국은 진정한 소망에 이를 것이다.
4 인내로 자신의 영혼을 구한다
마지막 때에는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며 큰 지진과 기근과 전염병이 일어나고, 무서운 일과 하늘의 징조들이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건들이 있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이름 때문에 성도들이 핍박을 받게 된다. 그들은 박해를 당하고, 감옥에 갇히며, 집권자들 앞에 끌려가며, 심지어 형제와 친척, 친구을 통해 넘겨져 죽임을 당하기도 한다. 결국 이 모든 일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미움을 받는 것이다.
핍박하는 자들 가운데에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는 자들도 있을 수 있다. 오늘날 가톨릭의 예수회나 종북 기독교의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듯, 참된 성도들이 겪는 환난은 외부의 적뿐 아니라 종교적 위선자들로부터도 온다. 그러나 이러한 환난을 통과하며 우리는 인내를 배우고, 마침내 영혼(생명)을 얻게 된다. 곧 예슈아의 남은 고난에 참여하는 자가 장차 함께 유업을 받고 영광에 동참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지막 때가 다가올수록, 우리는 환난에도 흔들리지 않고 그날을 소망하는 믿음으로 준비되어야 한다(눅21:10-19).
5 인내를 이루어야 온전해진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할 때에도 기뻐할 수 있다. 왜냐하면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인내를 통해 우리는 온전하고, 아무 부족함이 없는 믿음의 사람으로 세워진다.
이 신앙의 과정 속에서 우리에게 지혜가 부족하다면 하나님께 구해야 한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며 꾸짖지 않으시는 분이시기에 반드시 주실 것이다. 그러나 지혜를 구할 때는 반드시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아야 한다. 만약 지혜를 구하면서도 하나님이 주실 것을 믿지 못한다면, 그는 요동하는 바다 물결처럼 흔들리는 자가 되어 불신앙으로 어떤 것도 받지 못할 것이다. 머리로는 믿는다고 하지만 마음으로는 의심하는 불신앙은 언제나 요동하는 배와 같다(약1:2-8).
6 박해를 받는 자에게 복이 있다
공의를 위해 박해를 받는 자는 복이 있다. 천국이 이런 자들의 것이다. 왜냐하면 천국은 의로운 나라이기 때문이다. 의로운 백성이 이 땅에서 공의를 위해 싸우는 것이다. 이것이 공의의 유익을 위해 싸우는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하나님의 유익을 위해 싸우는 것이다. 두가지는 동일하다. 하나님의 공의를 위해 욕을 먹고 박해를 당하고 거짓으로 모함을 당하는 자들에게 복이 있다.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하는 이유는 이런 자들에게 하늘에서 상이 크기 때문이다. 구약 선지자들도 이와 같이 박해를 받았다(마5:10-12).
7 기다림을 위해 성령을 주셨다.
우리가 그날을 소망하면서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우리가 아직 경건하지 않고 연약할 때 예슈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기 때문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성령으로 우리에게 부어주셨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죽음에 내어주는 것보다 큰 사랑은 없다. 그래서 하나님의 큰 사랑을 입은 우리는 담대함으로 영원히 승리하는 그날을 소망할 수 있는 것이다(롬5:5,6).
이렇게 죽으신 예슈아를 여호와께서 살리셨다. 죽음으로 끝났다면 영원한 승리가 되지 못했지만, 예슈아께서 원수인 사망을 이기시고 여호와께서 다시 살리심으로 우리에게 소망이 되신 것이다. 여호와께서 아들 예슈아를 높이시고 약속하신 대로 예슈아께서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 우리에게 부어주셨다. 이는 원수가 예슈아의 발등상이 되기까지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영원히 함께 하시고 도우시려고 보내신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십자가에 예슈아를 못박았으나 여호와께서 그분을 살리셔서 우리의 주(머리)와 메시아가 되게 하셨다(행2:32-36).
8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이유
여호와께서 자신의 아들을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두신 이유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기 위함이다. 율법 아래 있던 자들을 아들의 명분, 곧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하려 하심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이상 죄의 종으로 사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로서 살아가며 영생을 유업으로 받게 되었다. 다시 말해 죄로 인해 율법의 제재를 받는 종들이 아니라, 의로 인해 율법 안에서 자유로운 아들들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아들의 영으로 하나님께 아바 아버지라 부르는 것이다(갈4:4-7).
9 살아나심으로 구원을 받을 것이다
의로운 사람을 위해서도 죽는 것은 쉽지 않다. 선한 사람을 위해 용감하게 죽는 사람도 간혹 있지만 심지어 우리가 아직 죄인일 때 다시 말해 약한 자들일 때 예슈아께서 죽으심으로 아버지의 사랑을 우리에게 확증하셨다. 그리하여 예슈아의 피로 우리가 의롭게 되었고,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았다. 즉 새로운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10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예슈아께서 죽으심으로 우리를 하나님과 다시 화목하게 하신 이유는, 두번째 기회를 주셔서 거룩하고 흠 없으며 책망할 것이없는 자로 세우시기 위함이다. 그러나 이 목적은 예슈아께서 죽으셨다고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믿음에 거하며 굳게 서서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즉, 인내로 끝까지 참고 소망을 붙들며 두마음을 품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 자만이 온전한 자가 될 수 있다(골1:21-23).
11 억울한 피가 땅에 저주와 심판을 가져온다
모든 것이 여호와께로 부터 나왔다. 우린 창조물로서 아버지와 화목해야 한다. 이것을 위해 예슈아께서 오셔서 영원한 중보자가 되셔서 화목하게 하셨다. 그리고 똑같은 사명을 우리에게 주셨다.
이 땅은 억울한 자들의 피로 저주를 받는다. 즉 불의로 인해 땅은 가시와 엉겅퀴를 낸다. 그러므로 우린 공의를 위해 하나님의 의가 되어 환란과 핍박 중에서도 목숨을 아끼지 않고 싸워야 한다. 또한 공의로운 자들 편에서 그들과 함께 고난을 받는 것이 기름부음을 받은 그리스도의 역할이다.
즉 번성과 축복을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 공의를 세우기 위해 싸움으로 억울한 피가 이 땅에 흘리지 않게 하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며 그리스도의 사신으로서의 역할이다. 이를 통해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기 때문이다(고후5:18-21).
우린 선지자를 선지자로서 대우해야 하며 의인을 의인으로 대우해야 한다. 의인을 불의한 자로 불의한 자를 의인으로 칭하는 악한 시대에 이 말씀은 우리에게 공의를 세우라는 명령과 같다. 세상에서 환란을 당하더라도, 하나님의 사람들의 손으로 위로받고 다시 싸울 힘을 내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이 일을 우리를 통해 행하기 원하신다. 예슈아께서는 이런 자들은 결단코 상을 잃지 않을 거라고 강조하셨다. 그만큼 이 일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우리의 손으로 직접 공의대로 하나님의 사람들을 대우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마10:40-42).
세상은 자신의 범죄를 덮기 위해 희생양을 찾는다. 그러나 이 땅은 억울한 피로 망하는 것이다(창4:11). 억울한 피를 흘리게 한다면 이 땅에 사는 모든 자가 그 피의 댓가를 지불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끝까지 의로운 자의 편에서 위로하고 대우하고 보호하며 함께 싸워야 한다. 그래야 이 땅을 공의로 세울 수 있다. 공의를 위해 하나님의 의가 되는 것이 곧 그리스도의 사신이 되는 것이며, 우리의 사명이다.
샤밧 예배: 토요일 10시반
대전시 동구 가양동 39-11 2층 레올람 토라 하우스
깃발 재작 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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