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양 영춘 | 순국경찰관 13용사의 묘역을 찾아보다 - 드론촬영(Drone shot 4k)
Автор: 충북북부보훈지청
Загружено: 2022-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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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용사 묘역 : 충북 단양군 영춘면 상리 375
13용사 전투기록
1. 경과(經過)
단양군 영춘면 상리 산 62번지에 안장되어 있는 13용사 영령은 6.25당시 북괴군 패잔병이 소백산에서 태백산을 거쳐 북상중 인민군이 퇴로가 차단되자 영춘면 의풍리와 동대리 남천리 일원에서 운집하여 인근 부락을 침입, 식량과 가축을 탈취하고 주민을 식량운반에 동원하고 있을 때 당시 영춘지서장 김한수 지휘 아래 작전계획을 수립, 경찰 20명과 향토방위대, 청년방위대 등 약 150명을 동원하여 전직경찰인 의병대장 김치운(당시27세 정도)이 인솔전투에 참가, 의풍리 전투(50.11.5.), 동대리전투(51.6.7.), 남천리전투(51.11.5.)에서 혁혁한 공을 세우고 구국을 위하여 산화한 용사들의 넋을 달래기 위하여 사망 장소 여러 곳에 방치되어 있던 묘소를 1985.11.12. 성역화하여 단양경찰서에서 묘소를 관리해오며 매년 현충일에 전직원 및 면민이 모두 모여 기념식을 갖고 있으며 6. 25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학생들에게 이곳을 견학시켜 안보 견학장으로 활용해 오고 있음
2. 전사(戰史)
1) 의풍전투
9.28 수복후 영춘면 의풍리 일대에 인민군 패잔병 약 2~3천명이 집결하여 「의풍은 인민공화국이다」「농작물을 추수하고 있다」라는 정보를 입수하고 1950년 10월 초순경 당시 영춘지서장 김한수 지휘 아래 영춘지사에 지휘본부를 두고 작전계획을 수립, 경찰 20명과 향토방위대, 청년방위대 약 150명을 동원하여 전직 경찰(영춘지서 차석)인 의병대장 김치운(당시 27세 정도)이 도보로 인솔하여 투입, 베틀재에서 노루목 방향으로 계곡을 타고 접전중 김치운이 인솔하는 선발대 약 10명이 먼저 의풍초교 주변까지 전진하고 후속부대가 의풍리 입구까지 진입시 인민군 패잔병 수백명에게 완전 포위당하여 집중사격을 당하여 제대로 저항도 못하고 선발대 5명이 전사하고 부대는 각처로 흩어져 후퇴 철수하였으며, 의병대장 김치운은 적탄에 대퇴부를 맞고 의풍초교 교실로 피신하다가 적에게 다시 사격을 당하여 전사하였다. 그후 20여일이 지난 다음 전사자를 찾으러 약 100여명을 동원, 전지에 도착하여 옷과 신발이 벗겨진 전사자와 의병대장 김치운외 4명을 운반하여 현 위치에 안장하였다. 이 전투에서 의병 김태명(면직원)과 이완식(영춘초교 교사)은 행방불명 되었음
2) 남천전투
1950년 10월 중순경 영춘면 남천리에 북괴 패잔병 수명이 식량을 탈취하여 갔다는 정보에 의거 영춘지서장 김한수는 의병 박노현, 이원실을 직접 지휘하여 60미리 박격포를 가지고 공비들을 쫒기 위하여 출동, 후속부대에 포탄지원(운반)을 받으면서 남천리 마을 산밑에 포격을 가하는(멀골방면) 한편, 영춘지서 순경 김일용(당시 24세)은 의병 30명과 80미리 박격포 1문을 가지고 진격하여 남천 물방앗간 주변에서 멀골방향으로 사격을 가하던중 60미리 박격포에서 불이 번쩍 났으나 포탄 격발에 이상이 있음을 인지하고 순경 김일용이 가서 확인한 바 김한수 지서장은 파편에 맞아 논바닥에 쓰러져 있고 사수 이원실은 하체가 날아가고 박노현은 즉사하였다. 원인은 실포로 폭발하여 피해를 입었다고 하며 생존자 김한수와 이한실은 주민을 동원, 응급조치한 후 후송과 동시 부대를 철수하던 도중에 이원실은 사망하고 김한수만 단양으로 후송되었음(이원실 : 인민군 자수병으로 의병에 지원한 박격포 사수, 박노현 : 청년향토방위대 박격포 부사수)
3) 동대전투
1950년 12월 20일경 영춘면 동대리 용수동에 인민군 패잔병 북상부대와 남하부대가 합류, 영춘지서를 습격하려고 의풍리에서 집결하였던 2,500여명이 몰려온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단양 본서에서 온 지원부대등 경찰의병등 1개소대 40여명을 경사 정00(당시 34세정도)의 지휘 아래 작적계획을 수립, 전투에 참가하여 용수동에서 선발대 약100여명의 공비와 교전중 영춘지서 순경 김병호, 의병 서영수, 의병 석종철이 전사하자 영춘지서로 부대를 후퇴시켰으며 그 후 12월 25일에 지서까지도 습격을 당하게 되었음(전과는 없고 전사자 3명 발생)
3. 참고사항
1) 상기 전투사 중 의풍전투와 남천전투는 당시 참여하였던 현 영춘 경우회장 김일용의 증언이며 동대전투는 당시 남천전투에서 싸웠던 지서장 김한수의 후임으로 부임하여 싸웠던 경위 조병익(前 조합장)의 증언인 바, 전투 연월일은 당 지서에 비치된 경찰관 전사자 명단이 전사자 연월일과 상이함(의풍전투 : 1950.11.5. 남천전투 : 1951.11.5. 동대전투 : 1951.6.7.)
2) 전사자는 당시 순경은 경사로, 의병은 순경으로 추서하였음
3) 유병근 용사
영춘초교 교사로 재직하던 유병근은 6.25가 발발하자 의병에 지원 남천리 성골에 인민군 패잔병이 잠복해 있다는 정보에 의거 고향이 이북이므로 이북말로 설득시키기 위하여 수류탄 3발을 감추고 중우적삼을 입고 투입하였던바 잡혀 몸에서 수류탄이 나오자 학살당하였음
4) 자치단체 현재 지원사항
단양군은 매년 현지관리비(연간 3백만원)를 영춘면생활안전협의회에 지원하여 단장 및 현충일 추모 행사 거행(국가관리묘역으로의 지정 및 국비지원의 필요성이 있음)
자료의 제공(출처) : 단양경찰서
현장방문 협조 : 現 단양경찰서 경무계장(김국수), 現 영춘파출소장(김규환)
드론촬영 : 이순규(Welcome-fly)
inside music : Heroes - AShamaluevMusic [Epic Inspirational and Cinematic Motivational Background Mus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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