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cliper

Популярное

Музыка Кино и Анимация Автомобили Животные Спорт Путешествия Игры Юмор

Интересные видео

2025 Сериалы Трейлеры Новости Как сделать Видеоуроки Diy своими руками

Топ запросов

смотреть а4 schoolboy runaway турецкий сериал смотреть мультфильмы эдисон
Скачать

일본 근대화의 주역은 왜 천황을 받들었을까? - 역사의 재원쌤

Автор: 손에잡히는경제

Загружено: 2025-12-08

Просмотров: 19648

Описание: #재원쌤 #역사의재원쌤 #사무라이 #일제강점기 #박정호교수 #이쿠사가미 #전쟁의신

[ai를 통해 요약한 내용입니다]

✅ 내용 요약 + 타임코드
00:00 ~ 03:00 — 아편전쟁의 충격
아편전쟁에서 청나라가 영국에 참패 → 동아시아 질서 붕괴 시작
청은 체면 때문에 “별일 아니다”라고 축소
조선·일본은 큰 충격, 이후 선택이 100년 역사를 가름함

03:00 ~ 05:30 — 조선 vs 일본의 서로 다른 판단
일본: 난학(네덜란드 학문) 통해 서양 정보 수집 → 위험성 빨리 인식
조선: 청의 말만 믿고 “그냥 작은 사건”이라 생각
이 시점이 운명 갈림길

05:30 ~ 09:00 — 일본 정치 구조의 모순(막부·다이묘·덴노)
덴노는 상징, 실권은 막부
번(다이묘)이 지방을 사실상 독립적으로 운영
경제 악화 + 외세 출현 → 권력 구조 흔들림 시작

09:00 ~ 12:00 — 하급 무사(사무라이)들의 불만과 성리학
오랜 평화 → 사무라이가 할 일 없어짐 → ‘공부하는 계급(사족)’으로 변화
성리학 = 수직질서 강조
뒤죽박죽 권력체계가 불합리하다고 판단 → ‘존왕양이(덴노 중심)’ 사상 등장

12:00 ~ 15:30 — 미국 함선 내항과 메이지유신 발화점
1853년 미국 흑선 등장
막부는 우왕좌왕, 다이묘마다 입장 갈림
덴노 + 하급무사 세력이 결합하며 메이지 유신의 불씨 형성

15:30 ~ 18:00 — 사쓰마·조슈 중심의 막부 타도
조슈가 먼저 반발 → 1차 조슈 정벌 패배
사카모토 료마가 사쓰마–조슈 동맹 성사(사초동맹)
2차 정벌 실패 → 막부 몰락
대정봉환 → 메이지 천황 중심 체제 출범

18:00 ~ 21:00 — 메이지 유신의 혼란: 하나의 길이 아니었다
내부 파벌 매우 다양:
‘서양 배워야 한다’
‘오랑캐 몰아내자’
‘일본식+서양식 혼합’
메이지유신은 단일 철학이 아니라 여러 세력의 “임시연합”

21:00 ~ 24:00 — 메이지 정부의 핵심 개혁
1) 폐번치현
다이묘 영지(번) 폐지 → 중앙정부 직할 ‘현’ 체제로 통합
덴노가 직접 전국 순회하며 권력 과시

2) 경제·사회 인프라 정비
은행 설립, 우편·전신 도입, 항만 정비
철도 건설(1872 도쿄–요코하마 개통) → 1890년엔 전국 1,250km

24:00 ~ 28:00 — 이와쿠라 사절단: 일본 근대화의 뼈대
국가 예산 1%를 들여 미국·유럽에 100명 파견
목적: 불평등조약 개정(실패) + 근대화 모델 탐색
미국식(대통령제) → 일본과 안 맞음
독일식(황제 + 강한 내각) 채택
귀국 후 교육제·징병제·헌법체제 설계에 반영
이토 히로부미도 이 멤버

28:00 ~ 32:00 — 정한론(征韓論) 등장
메이지 내각 전체가 “조선은 언젠가 정벌해야 한다”에 동의
내부 갈등은 “언제 하느냐”의 문제
왜 조선을 노리나? / 하급 무사 실업 문제 /일본 내 불만 분출구 필요
만주로 나가기 위한 관문
약육강식 국제질서 흐름과 동일

32:00 ~ 36:00 — 사이고 다카모리와 정한론 충돌
사이고: “지금 당장 조선 정벌!”
정부: “아직 준비 부족”
사이고 실각 → 사쓰마 반란 → 사무라이 시대 종말

36:00 ~ 40:00 — 조선과 일본의 외교 재설정 문제
일본은 천황국가로 재편 → 조선과의 외교 용어에 ‘황·칙’ 사용
조선 입장: “황제는 중국만 쓴다” → 거부
외교 용어 문제로 협상 교착

40:00 ~ 43:00 — 왜관 점령 사건(1872)
일본이 부산 왜관을 폐쇄 후 무단 점령
이름을 ‘대일본국 공관’으로 변경
사실상 군사적 압박
조선은 “문제 키우기 싫다”며 대응 미루기

43:00 ~ 52:00 — 조선의 쇄국 vs 일본의 개국 전략 충돌
조선: 서양·일본 모두 ‘양이(오랑캐)’ 취급 → 접촉 회피
일본: 조선이 답을 안 하자 강제적 방식으로 관계 재설정 추진

이 흐름이 **강화도조약(1876)**으로 이어짐
→ 조선이 본격적 근대 외교의 문을 열게 된 계기

✅ 한 줄 정리
아편전쟁 이후 일본은 변화에 적응하며 근대화를 택했고, 조선은 청을 믿고 변화를 거부한 결과 양국의 격차가 벌어져 결국 강화도조약과 정한론의 길로 이어졌다.

※진행: 박정호 명지대 교수

◈ 방송시간
유튜브: 매일 오전 10시 30분 ~ 11시 20분
라디오: MBC 표준FM 매일 저녁 10시 5분 ~ 11시

Не удается загрузить Youtube-плеер. Проверьте блокировку Youtube в вашей сети.
Повторяем попытку...
일본 근대화의 주역은 왜 천황을 받들었을까? - 역사의 재원쌤

Поделиться в:

Доступные форматы для скачивания:

Скачать видео

  • Информация по загрузке:

Скачать аудио

Похожие видео

© 2025 ycliper. Все права защищены.



  • Контакты
  • О нас
  • Политика конфиденциальности



Контакты для правообладателей: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