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 1주간 수요일 / 2026년 1월 14일 / 김유정 유스티노 신부
Автор: Toma's TV
Загружено: 2026-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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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 1주간 수요일 / 2026년 1월 14일 / 김유정 유스티노 신부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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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사무 3,1-10.19-20; 마르 1,29-39
찬미 예수님
어제 대전교구 사제 서품식에서 두 분의 새 신부님이 탄생했습니다. ‘저녁이 되고 해가 지자’, 인사 발령이 났는데, 우리 본당 보좌 신부님은 브라질 교포사목을 위한 언어연수를 떠나게 되셨고, 어제 서품 받으신 한상록 마태오 신부님이 새 보좌 신부님으로 부임하십니다. 두 분 신부님 위해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사무엘의 부르심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소년 사무엘은 사제 엘리 앞에서 주님을 섬기고 있었는데, 그때는 주님의 말씀이 드물게 내렸고 환시도 자주 있지 않았던 어두움의 시기였습니다.
하느님의 등불이 아직 꺼지기 전에, 주님께서는 하느님의 궤가 있는 성전에서 자고 있던 사무엘을 부르십니다. 여기서 ‘하느님의 등불이 꺼지기 전’이라는 표현은 이중적 의미를 갖는데요, 하나는 ‘동이 트기 전’이라는 시간적 배경을 의미합니다. 다른 하나는 영적으로 무지하고 어두웠던 이스라엘의 상태를 상징합니다. (Bergen, 86) 하느님으로부터 등을 돌리고 있던 이스라엘의 미래는 어둡지만, 하느님의 궤가 있는 성소에서 자고 있던 사무엘의 존재가 희망적입니다.
주님께서는 사무엘을 세 번이나 부르셨지만 사무엘은 엘리가 부르는 줄 알고 엘리에게 갑니다. 마침내 엘리는 하느님께서 부르신다는 것을 알고 사무엘에게 말합니다. “누군가 다시 너를 부르거든, ‘주님,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여라.”
주님께서 다시 찾아와 서시어, “사무엘아, 사무엘아”하고 부르십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창세 22,1.11)와 모세를 부르실 때(탈출 3,4)처럼 두 번 이름을 부르십니다. 사무엘은 엘리에게 들은 대로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이로써 새로운 역사가 시작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무엘에게 어떤 일을 맡기셨을까요? 아직 아무런 일도 맡기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한 인간이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한 것만으로, 그리고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한 것만으로 새로운 역사는 시작됩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열병으로 누워있던 시몬의 장모를 고쳐주십니다. 작년 대림 특강 때 보나벤뚜라 수녀님의 강의를 듣고 새로운 사실을 배웠는데요, 예수님 시대에는 병에 걸리면 목숨이 위험했다는 것입니다. 의학이 많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에, 열병이 나면 이것이 감기인지, 독감인지, 말라리아인지 잘 알지 못했고, 병자들은 죽음에 대한 공포 속에서 지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병자의 열이 가셨습니다.
‘저녁이 되고 해가 지자’, 사람들이 병든 이들과 마귀 들린 이들을 모두 예수님께 데려옵니다. 저는 이 구절이 유난히 마음에 남는데요, 왜 해가 지자 사람들을 데려왔을까요?
안식일이 끝났기 때문입니다. 유다인들에게는 해가 지면 새로운 날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들은 안식일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병자들과 마귀 들린 이들을 데려옵니다. 하루 내내 해 지기를 기다리면서 얼마나 마음이 조급하고 초조했을까요? 안식일은 더 기쁜 날이 되어야 하는데, 이들에게 안식일은 의무이고 족쇄였습니다. 이 광경이 예수님께는 얼마나 가슴이 아프셨을까요?
예수님은 갖가지 질병을 앓는 사람을 고쳐주시고 마귀를 쫓아내십니다. 다음 날 새벽 아직 캄캄할 때, 예수님께서는 일어나 외딴곳으로 나가시어 그곳에서 기도하십니다.
사무엘이 하느님의 부르심을 들을 때와 같은 시각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무엘처럼 기도하셨을 수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
그 기도 속에서 아버지의 뜻을 알아들으셨기에, 시몬과 그 일행이 “모두 당신을 찾고 있습니다.”라고 말씀드렸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다른 이웃 고을들을 찾아가자. 그곳에도 내가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나는 그 일을 하려고 떠나온 것이다.”라고 확신에 차서 말씀하신 것은 아닐까요? 여기서 ‘떠나온 것이다’라는 말씀은, 고향 나자렛을 떠났다는 말씀일 수도 있지만, 하느님 곁을 떠나 이 세상에 오신 것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새벽 아직 캄캄할 때, 외딴곳에 가시어 기도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그려봅니다. 주위는 온통 캄캄하지만, 예수님 주위는 빛이 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빛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등불이 꺼지기 전에 소년 사무엘은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예수님은 캄캄한 곳에서 빛나고 있던 하느님의 등불이셨습니다.
나이가 드니 새벽에 잠이 잘 깹니다. 여러분도 그러신가요? 새벽에 깨면 무엇을 하시나요? 스마트폰을 볼 수도 있고, 책을 볼 수도 있고, 기도를 할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그 순간 우리가 선택하는 것이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것 혹은 가장 우리의 마음을 빼앗고 있는 것일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과 단절되어 있는 혼자만의 시간, 무엇을 하든 방해받지 않을 수 있는 시간, 그때 우리는 낮에도 늘 붙들고 다녔던 스마트폰에 또다시 매여 있을 수도 있고, 낮에도 우리를 괴롭혔던 걱정거리를 또다시 붙들고 있을 수도 있고, 하느님과 둘만의 시간을 보낼 수도 있습니다.
내일 새벽에는 깨시면 다른 것을 하기보다 마음으로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라고 되뇌시거나 묵주를 들고 기도를 드려보시면 어떨까요? 주위가 아무리 캄캄하더라도, 우리 영혼은 빛날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따르려 마음먹은 이의 영혼은 어둠 가운데에도 빛이 나기 때문입니다. 그 빛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 (요한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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