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파의 성적표 우리 식탁의 공급망을 평가하다

Описание: 양파 하나로 본 우리 밥상 물가의 비밀: 당신이 몰랐던 5가지 놀라운 진실
서론: 매일 마주하는 식료품 가격, 그 뒤에 숨겨진 이야기
마트에 갈 때마다 우리는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오르내리는 식료품 가격을 마주합니다. 특히 양파처럼 거의 모든 요리에 들어가는 필수 식재료의 가격표 앞에서 고개를 갸웃했던 경험, 한 번쯤은 있으실 겁니다. 풍년이라는데 가격은 왜 그대로일까? 이러한 가격 변동의 진짜 원인을 속 시원히 알기란 좀처럼 쉽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단순히 날씨나 생산량 같은 한두 가지 요인으로 설명되지 않는 복잡한 시스템에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에서 발표한 "농식품 공급망 성과 측정과 과제" 보고서는 바로 이 문제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제공합니다. 이 보고서는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식재료인 '양파'를 현미경 삼아, 우리 밥상 뒤편의 복잡한 공급망 시스템을 마치 MRI로 촬영하듯 정밀하게 분석했습니다. 그 진단 결과는 우리가 막연히 짐작하던 것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이 글에서는 해당 보고서가 밝혀낸 가장 놀랍고, 때로는 우리의 직관에 반하는 핵심적인 발견 5가지를 누구나 이해하기 쉽게 풀어보려 합니다. 당신이 무심코 집어 들었던 양파 한 망에 숨겨진 우리 밥상 물가의 비밀을 함께 파헤쳐 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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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첫 성적표 공개: 한국 양파 공급망, 10점 만점에 3.754점
보고서는 국내 양파 공급망의 종합적인 성과를 처음으로 점수화하기 위해 SCOR 모델이라는 국제 표준 분석틀을 사용했습니다. 이는 공급망의 전반적인 건강 상태를 진단하는 일종의 '표준화된 성적표'와 같습니다. 그 결과, 국내 양파 공급망이 받은 첫 성적표는 10점 만점에 3.754점이었습니다.
언뜻 보기에 이 점수는 재앙적으로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보고서는 이 점수를 '평균(3점)보다 약간 높은 수준'이라고 평가합니다. 하지만 이 평범해 보이는 총점 뒤에는 훨씬 더 우려스러운 진실이 숨어 있었습니다.
세부 항목을 들여다보자 문제가 드러났습니다. 전체 17개의 세부 성과지표 중 무려 7개가 개선이 시급함을 나타내는 '빨간색' 평가를 받은 것입니다. 이는 공급망의 특정 부분들이 제 기능을 거의 하지 못하고 있다는 명백한 경고등입니다. 우리 밥상 물가의 불안정성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보여주는 첫 번째 단서입니다.
2. 모든 것을 움직이는 힘은 '농부'가 아닌 '소비자'였다
우리는 흔히 공급망을 '농장에서 식탁으로' 이어지는 일방적인 흐름으로 생각합니다. 농부가 생산하면, 유통업체를 거쳐 소비자가 구매하는 단순한 구조 말입니다. 하지만 보고서는 ISM 분석이라는 '영향력의 흐름도'를 통해 이 통념을 완전히 뒤집었습니다. 어떤 요인이 시스템 전체를 움직이는 진짜 '구동력'을 가졌는지 밝혀낸 것입니다.
공급망을 움직이는 7가지 핵심 요인(생산, 수확 후 관리, 출하량 조절, 판매, 정보, 기술, 소비) 중에서 다른 모든 요인에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는 것은 다름 아닌 **'소비'**였습니다.
이는 소비자의 선택, 구매량, 만족도가 단순히 공급망의 마지막 단계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오히려 소비자의 움직임이 생산량 결정부터 저장 방식, 판매 전략까지 공급망의 모든 단계를 좌우하는 '시작점'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보고서는 이 발견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강조합니다.
"국내 양파 공급망에서 ‘소비’는 단순히 생산이나 판매 등 다른 요인의 영향을 받아서 결정되는 결과로서의 단계가 아니라 소비 자체가 다른 요인에게 더 많은 영향을 준다는 것임."
결국 우리 밥상 물가의 방향키는 생산자가 아닌, 바로 우리 소비자들의 손에 쥐어져 있었던 셈입니다.
3. 가장 큰 문제는 '밭'에서 시작된다
공급망의 비효율은 어디서 가장 크게 발생하고 있을까요? 많은 사람들이 복잡한 유통 과정을 떠올리지만, 보고서는 의외의 지점을 지목합니다. 바로 모든 것의 시작점인 '생산' 단계입니다.
앞서 언급했듯, SCOR 분석에서 '개선 필요(빨간색)' 평가를 받은 7개 지표 중 4개가 '생산' 단계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구체적인 문제점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 농가의 계약재배 비율: 안정적인 생산과 공급 계획의 기초가 되는 계약재배 비율이 평균보다 낮아 수급 예측을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 종자 가격 및 수급 문제: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는 종자 가격이 상승하고 수급이 불안정해지면서 농가의 생산 기반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 생산 단수(단위 면적당 생산량): 기후 변화 등의 영향으로 단위 면적당 생산량이 불과 3년 만에 26% 이상 급감했습니다(2021년 8,541kg/10a → 2024년 6,314kg/10a). 공급량 자체에 빨간불이 켜진 것입니다.
• 원활한 인력 수급: 농촌의 고령화와 인력 부족은 특히 파종 및 수확 시기에 심각한 문제로 작용해 제때 생산하는 것조차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 발견은 우리에게 중요한 사실을 알려줍니다. 아무리 유통 시스템이 발전하고 판매 전략이 뛰어나더라도, 가장 첫 단추인 '생산'이 불안정하면 공급망 전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4. 유통비용이 80%? 우리 밥상에 오르기까지의 비싼 여정
양파 가격에서 양파 자체의 가치는 얼마나 될까요? 보고서가 제시한 수치는 충격적입니다. '양파 유통비용 비중' 지수는 10점 만점에 2.179점이라는 처참한 점수를 받았습니다.
구체적인 숫자는 더욱 놀랍습니다. 1998년부터 2022년까지 양파의 평균 유통비용 비중은 71.7%에 달했으며, 최근에는 80%를 초과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우리가 양파에 1,000원을 쓴다면, 그중 800원 이상이 양파 그 자체가 아닌, 밭에서 우리 집까지 오는 여정에 들어가는 비용이라는 의미입니다. 이 유통비용은 단순히 운송비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저장, 물류, 마케팅을 포함하며, 보고서가 특히 주요 원인으로 지목한 것은 **'소매 단계의 이윤과 비용'**이었습니다. 생산의 어려움과 더불어 유통, 특히 소매 단계의 높은 비용과 이윤 구조가 우리 밥상 물가를 끌어올리는 또 다른 주범이었던 것입니다.
5. 가격은 안정적인데, 왜 우리는 만족하지 못할까?
보고서에서 발견된 또 하나의 흥미로운 모순점이 있습니다. 객관적인 데이터인 '양파 소비자물가지수' 자체는 평균 이상의 성과(3.794점)를 보여 비교적 안정적인 흐름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소비자들이 주관적으로 느끼는 '가격 만족도' 점수는 가정소비자와 외식업체 모두 2점대로 매우 낮게 나타났습니다. 데이터는 안정적이라는데, 왜 우리는 비싸다고 느끼는 걸까요?
보고서는 이 '객관적 지표'와 '주관적 체감' 사이의 괴리가 발생하는 이유를 소비자의 구매 패턴에서 찾습니다. 소비자들은 양파를 한 번에 많이 사두기보다, 소량씩 자주 구매(월평균 2.33회)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때문에 간헐적인 가격 상승을 실제 물가 지수 변동보다 훨씬 더 민감하고 빈번하게 체감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거시경제 데이터와 가계 체감 사이의 전형적인 괴리를 보여주는 경제 정책의 고전적인 맹점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우리는 2번 항목에서 발견한 '소비자가 모든 것을 움직인다'는 원리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목격합니다. 가격에 대한 우리의 '인식'과 '체감'이 실제 구매 행동에 영향을 미치고, 이 민감한 수요 변화가 결국 공급망 전체를 뒤흔들 수 있는 강력한 변수가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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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문제를 측정할 수 있다면, 해결의 실마리도 찾을 수 있다
양파 하나를 통해 들여다본 우리 농식품 공급망은 생각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모든 요소가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연결된 시스템이었습니다. 소비자의 체감 물가가 생산량을 결정하고, 밭의 문제가 식탁 물가를 흔들며, 객관적 데이터와 우리의 감각 사이에 큰 간극이 존재했습니다.
수십 년간 우리는 밥상 물가를 예측 불가능한 날씨처럼 여겨왔습니다. 하지만 이 연구의 가장 큰 의의는 막연하게 '문제'라고만 느껴왔던 이 복잡한 현상을 구체적인 '점수'와 '데이터'로 측정하고 진단할 수 있는, 일종의 '기상 관측 도구'를 우리 손에 쥐여줬다는 점입니다.
문제를 정확히 측정할 수 있다는 것은, 곧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보고서는 진단에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다음 단계를 제안합니다. 바로 학계, 정부, 유통업체, 소비자를 아우르는 **‘농식품 공급망 성과 평가 협의체(가칭)’**를 구성하여, 이 측정 시스템을 제도화하고 지속적으로 관리하자는 것입니다.
이제 문제의 원인을 숫자로 파악할 수 있게 된 지금, 데이터를 정책으로 전환하고 우리 밥상의 안정을 되찾기 위한 여정은 이제 막 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