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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깨달음의 비밀, 단전호흡으로 가능할까?

Автор: Danye Sophia

Загружено: 2025-05-25

Просмотров: 3728

Описание: #단전호흡 #깨달음 #불교수행

인간이 위대한 이유는 존재의 비밀을 파헤쳐 궁극의 깨달음에 이를 수 있도록 진화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증명한 사람이 바로 싯다르타이고요. 그래서 우리는 세존의 가르침에 따라 묵묵히 수행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길이 오직 불교 하나뿐일까요?

깨달음을 지향하는 가르침은 불교 외에도 많습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힌두교인데, 안타깝게도 힌두교의 깨달음은 가상으로 프로그램된 허상에 불과합니다. 그렇다 보니 세존은 당시 힌두교의 모태가 되는 브라만교를 버리고 불교를 창시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세상에는 오직 불교만이 올바른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것일까요?

그런데 불교에 대해 괴상한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선도(仙道)를 따르는 도가(道家)의 수행자들입니다. 이들은 깨달음을 추구하며 해탈과 열반에 이르는 행위 자체에 의문을 던집니다. 깨달음에 대한 인식과 집착 자체가 자연의 순리에 위배 된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있는 그대로가 진리이기 때문에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다 보면 저절로 깨달음이 열리고, 이때의 깨달음 역시 너무 자연스러워서 의식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지요. 이것이 도가의 무위자연(無爲自然) 사상입니다.

다만 무위자연(無爲自然)에 익숙해지기 위해서는 자연과의 벽을 허물 필요가 있고, 그래서 떠올린 것이 자연의 호흡을 터득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단전호흡입니다.

인간의 호흡은 ‘나’라는 벽을 쌓아 자연과의 단절을 심화시킵니다. 그리고 여기서 온갖 희로애락과 생로병사가 생겨나고요. 하지만 개체의 호흡을 줄이고 자연의 호흡을 실천하다 보면 ‘나’라는 벽이 점차 무너져 자연과 둘이 아니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번뇌망상이 가라앉고 죽고 사는 문제에도 초연해집니다. 이처럼 자연에 깊게 순응하게 된 인간을 일러 선도에서는 신선이라 부릅니다.

그렇다면 신선이 되면 불교의 깨달음을 얻게 된 것일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다만 신선 가운데 일부가 계속해서 자연과의 거리를 줄여 완벽한 물아일체의 경지에 이르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선도 수련의 가장 궁극에 올라 순도 백프로의 무위자연이 되었다고 가정해 봅시다. 이때 과연 세존의 무상정등각이 열리게 될까요?

자, 이제 도가의 시조인 노자(老子)를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노자가 완벽한 무위자연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칩시다. 이렇게 되자 ‘나’는 아예 없습니다. 완전한 무아(無我)의 상태입니다. 그런데 이 상태는 사실상 ‘나’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시각을 바꾸면 관계망에 의한 자연 자체가 ‘나’이기도 한 까닭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나’가 있거나 없는 문제가 아니라 ‘나’의 범위가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범위가 없는 것을 가지고 ‘나’가 있다 혹은 없다 논할 수가 없는 것이지요. 그렇기에 그냥 있는 그대로 존재하는 상태가 되었고 이 정도면 더할 나위 없는 깨달음의 높은 경지가 됩니다. [단예소피아] 채널에서 ‘제1원인’을 들고나오기 이전의 관점에서 보면 불교의 깨달음과 완벽히 일치합니다. 그런데 본 채널에서는 마지막 관문인 ‘제1원인’을 풀어야 한다고 끊임없이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럼 노자에게 ‘제1원인’을 문제로 내면 어떤 대답을 내놓을까요?

그의 의식에서는 질문 자체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냥 저절로 존재하는데 왜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문제, 다시 말해 ‘제1원인’을 묻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질문 자체가 자연과 분리된 일반적인 인간들이 내뱉는 우문(愚問)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노자는 그냥 웃고 말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노자는 ‘제1원인’의 문제를 푼 것일까요? 아니면 ‘제1원인’ 마저 초월해 버린 것일까요? 그리고 세존의 무상정등각과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요?

노자가 무위자연(無爲自然)에서 계속해서 머물면서 유유자적할 것이라면 노자는 무상정등각을 성취한 것입니다. 다만 노자가 인간들과 어우러져 속세에 가끔씩 놀러 올 것이라면 약간의 걸림돌이 생기게 됩니다. ‘제1원인’의 숙제가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더라도 노자가 꿈에서 깬 상태를 계속해서 유지한다면 그의 깨달음(무상정등각)에는 아무런 하자가 없습니다. 열반, 해탈, 깨달음, 신선, 부처, 제1원인 같은 명제들은 자연과 단절되어 살아가는 인간들에게나 관심을 받는 것이니까요.

결론적으로 선도의 수련으로 불교의 무상정등각을 얻는 것이 가능합니다. 그 구체적인 과정은 대략 이렇습니다. 단전호흡을 통해 축기(縮氣)와 운기(運氣), 그리고 주천(周天)을 거쳐 채약(採藥)에 이릅니다, 채약이란 자연의 호흡(기운)을 인간의 단전 시스템에 장착하고 이를 실행함으로써 자연과의 벽이 허물어진 상태입니다. 이렇게 되면 자연과의 공명을 통해 ‘나’라는 경계 역시 무너집니다. 자연스럽게 불교의 위빠사나 수행과 같아지지요. 여기서 불교의 견성(見性)이나 각성(覺性)과 같은 체험이 저절로 일어납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무위자연에 순응함으로써 그런 체험에 대한 의식이나 집착이 없다는 점입니다. 이처럼 선도 수련의 궁극에 이르면 불교 수행과의 차이가 사라지고 그 경지도 같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의문을 하나 던지게 됩니다. ‘불교와 선도 가운데 어느 것이 깨달음에 유리할까’에 대한 질문입니다. 그건 사람의 근기에 따라 제각기 다를 것입니다. 어떤 이는 불교나 선도 가운데 하나에만 집중해도 되고, 또 어떤 이는 그 둘을 모두 선택하는 것이 유리할 수 있습니다. 불교와 선도의 장단점이 교차하니 특별한 재능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면 두루 겸비하는 편이 좋겠지요. 이런 이유로 불가(佛家)에서도 일부나마 선도의 호흡을 채택해 온 것이며, 또한 선도에서도 유불선(儒佛仙) 삼합이라는 가치를 소홀히 하지 않는 것입니다.

당신의 수행은 나날이 발전하고 있나요? 만일 만족하지 못한다면 선도와 불도를 두루 닦아 보는 건 어떠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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