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 143. 대항해시대와 종교개혁 이후의 유럽 - 종교 분쟁 1(아우크스부르크 화의)
Автор: 튤립 기독교 학교TV
Загружено: 2025-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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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포르투갈이 인도, 동남아, 브라질을, 스페인이 중남미 지역을 차지했기에, 후발 주자였던 영국과 프랑스는 그들의 세력이 닿지 않는 북미 지역을 전략적으로 탐험했다. 그 과정에서 영국은 오늘날 미국을 이룰 지역에 정착촌을 건설하고 조금씩 그 영역을 늘려갔다. 프랑스는 영국보다 더 위쪽의 캐나다 지역을 개척했지만, 본국에서는 너무도 추운 그 지역에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는 않았다.
2. 중교 개혁은 종교와 정치의 일치 사회였던 중세에 많은 사회 문제를 가져다 주었다. 즉, 카톨릭을 믿느냐 개신교를 믿느냐의 문제가 전쟁을 불러오는 요소로 충분히 작용할 수 있었다.
특별히, 신성로마제국 황제는 독일 전 지역이 카톨릭을 믿기를 바랐지만, 많은 제후들은 개신교를 믿기를 선택하며 황제의 공격에 맞서 방어 동맹을 구축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내외의 장애물을 제거한 황제가 개신교 제후들을 완파한 뒤, 그들을 가혹하게 다루고 협조한 이들에게 약조를 이행하지 않았으며, 후계 문제를 놓고 독일 귀족들과 갈등이 일면서 상황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개신교 세력은 모리츠를 중심으로 재결집해 황제군을 물리쳤고, 그 과정에서 황제는 직위를 아들과 동생에게 물려주고 강제 은퇴하는 처지에 몰렸다. 신임 신성로마제국 황제는 이전의 합의를 준수하기로 하고, 영주의 신앙에 따라 카톨릭을 믿을지, 개신교를 믿을지가 결정되는 아우크스부르크 화의를 체결해 더는 종교 문제로 분란이 일지 않게 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 화의에는 당시 막 세력을 얻고 있었던 칼빈 파를 배제했고, 이로 인해 독일에서는 신앙의 문제로 많은 분쟁이 이어지게 되었다.
※ 교재는 『Streams of Civilization』, Albert Hyma, Christain Liberty Press, 2011 을 학교 자체적으로 번역 편집해서 사용 중입니다. 영상에 나오는 이 교재가 필요하신 분은 학교로 연락 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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