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론(22)] 이기는 자가 되기 위해 이겨내야 할 대상은 대체 무엇인가?(창
Автор: 회개와천국복음[정보배]
Загружено: 2026-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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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기독론(22)] 이기는 자가 되기 위해 이겨내야 할 대상은 대체 무엇인가?(창32:13~32)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 [기독론(22)] 이기는 자가 되기 위해 이겨내야 할 대상은 대체 무엇인가?...
1. 들어가며
인생은 끊임없는 싸움의 연속이다. 우리는 매일 무언가와 싸우며 살아간다. 때로는 사람과 부딪히고, 때로는 감당하기 벅찬 환경과 씨름한다. 성경은 우리에게 '이기는 자(The Overcomer)'가 되라고 명령한다. 요한계시록은 이기는 자에게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며,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게 하고,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는 영광을 약속한다. 그렇다면 과연 '이긴다'는 것은 무엇인가? 단순히 힘으로 상대를 제압하여 무릎 꿇리는 것이 승리인가?
성경에서 '이기는 자'의 가장 대표적인 표상으로 등장하는 인물은 야곱이다. 그는 얍복강 나루터에서 밤새 씨름한 끝에 하나님으로부터 '이스라엘', 즉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는 이름을 얻었다. 야곱의 생애는 투쟁 그 자체였다. 형 에서의 발뒤꿈치를 잡고 태어난 순간부터, 장자권을 쟁취하고 거부가 되기까지 그는 치열하게 싸웠다. 그러나 얍복강 사건은 그가 평생 싸워왔던 대상이 과연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진짜 이겨야 할 대상이 무엇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전환점이었다.
이번 시간에 우리는 야곱의 이야기를 통해, 그리고 신약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영적 현실을 통해, 진정한 승리자가 되기 위해 우리가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 무엇인지 일곱 가지 질문을 던져보고자 한다. 이 질문들은 막연했던 우리의 싸움 대상을 명확하게 조준해 줄 것이다.
2. 성경이 말하는 '이기는 자'란 단순히 힘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승리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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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야곱에서 시작된 '이기는 자'의 계보는 오늘날 우리에게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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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400명의 군사를 이끌고 오는 형 에서 앞에서, 야곱이 직면한 진짜 적은 과연 '에서'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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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하나님은 왜 절체절명의 순간에 야곱을 돕는 대신, 도망치지 못하도록 그의 환도뼈를 치셨는가?
야곱은 얍복강에서 끝까지 잔꾀를 부렸다. 그는 예물을 먼저 보내고, 레아와 라헬을 비롯한 자식들을 먼저 강 건너로 보냈다. 그리고 자신은 맨 뒤에 남았다. 여차하면 혼자라도 도망치겠다는 계산이었다. 그는 지팡이 하나만 가지고 요단을 건넜던 시절처럼, 이번에도 지팡이 하나 들고 도주하여 목숨을 부지하려 했을지 모른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깊은 내면에 자리 잡은 지독한 '자기 사랑(Self-love)'이다.
그때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을 했다. 그리고 야곱이 끝내 굴복하지 않자, 그 천사는 야곱의 환도뼈(허벅지 관절)를 쳐서 위골시켰다. 뼈가 어긋나버린 것이다. 이제 야곱은 뛸 수도, 도망칠 수도 없게 되었다. 왜 하나님은 이렇게 가혹하게 하셨을까?
"너 혼자만 살려고 도망치는 것은 안 된다"는 하나님의 강력한 메시지다. 하나님이 야곱을 부르신 목적은 그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아니다. 그를 통해 열두 지파가 세워지고, 그의 가문이 구원받아 아버지의 집에 함께 들어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하나님은 야곱의 가장 깊은 곳에 숨어 있던 이기적인 자아, 즉 나만 살겠다는 '자기 사랑'을 깨뜨리신 것이다. 환도뼈가 부러짐으로써 야곱은 도망칠 수 있는 다리를 잃었지만, 대신 하나님께 전적으로 매달릴 수밖에 없는 간절함을 얻었다. 이것이 승리의 비결이었다.
6. 구약과 달리 신약 시대를 사는 우리가 이겨내야 할 싸움의 대상은 어떻게 구체적이고 명확해졌는가?
구약 시대에는 싸움의 대상이 주로 눈에 보이는 적이나 환경으로 나타났다. 야곱에게는 에서였고,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가나안 족속들이었다. 그러나 신약 시대에 들어오면서 싸움의 실체는 훨씬 더 명확해졌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 대한 것이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며 가장 먼저 하신 일은 광야에서 마귀의 시험을 이기신 것이다. 또한 사역 내내 귀신을 쫓아내셨다. 구약에는 귀신을 쫓아내라는 명령이 명시적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신약 성도인 우리 안에는 성령이 계시기에 우리 안에 있는 더러운 영들을 몰아내야 한다.
오늘날 우리가 이기는 자가 되기 위해 넘어야 할 가장 큰 산은 바로 마귀와 귀신들이다. 그들은 우리에게 두려움을 심어주고, 자아를 부추겨 교만하게 하며, 끊임없이 하나님과 멀어지게 만든다. 겉으로는 사람과의 갈등이나 질병, 가난처럼 보일지라도, 그 배후에서 조종하는 악한 영들의 정체를 꿰뚫어 보고 대적해야 한다. 이것이 신약 성도가 싸워야 할 진짜 전쟁이다.
7. 회개를 방해하고 우리를 위축시키는 '두려움'은 단순한 감정인가, 아니면 실체 있는 영적 공격인가?
많은 성도들이 회개를 시작하면 오히려 더 큰 어려움을 겪곤 한다. 몸이 아프거나, 예기치 않은 사고가 터지거나, 알 수 없는 공포가 밀려온다. 나 역시 회개사역의 초기에 회개에 깊이 들어갔을 때, 죽을 것 같은 공포와 오싹함을 수없이 경험했다. 등골이 쭈뼛 서고 머리카락이 곤두서는 느낌, 이것은 단순한 기분 탓이 아니다. 내 안에 집을 짓고 살던 악한 영들이 쫓겨나가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며 주는 위협이다.
성경은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요일 4:18)고 말한다. 두려움은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를 위축시켜 영적 싸움을 포기하게 만드는 사탄의 가장 강력한 무기다. 어떤 성도는 귀신이 계속 죽이겠다고 협박하는 소리에 시달려 필자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필자는 단호하게 말했다. "성도님, 귀신은 우리를 죽일 권한이 없습니다. 죽고 사는 것은 하나님 손에 있습니다. 정 죽을 것 같으면 응급실에 가십시오. 가서 링거라도 맞으면서 계속 회개하십시오."
결국 그 성도는 죽지 않았다. 오히려 회개를 통해 두려움의 영을 몰아내고 밝은 얼굴을 되찾았다. 두려움은 실체가 없는 허상이다. 예수 이름의 권세 앞에서는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한다. 우리는 이 두려움이라는 감정 뒤에 숨은 영적 세력을 직시하고,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두려움은 떠나갈지어다"라고 선포하며 이겨내야 한다.
8. 우리가 이 치열한 싸움 끝에 도달해야 할 최종 목적지는 어디이며, 왜 '나 혼자'가 아닌 '우리'가 되어야 하는가?
야곱이 얍복강에서 그토록 처절하게 매달려야 했던 이유는 단 하나다. 살아서 아버지의 집(가나안)으로 돌아가기 위해서였다. 우리 인생의 최종 목적지 또한 분명하다. 저 천국, 새 예루살렘 성, 아버지의 집이다. 우리는 그곳에 들어가서 영원한 기업을 상속받는 상속자가 되어야 한다.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나 혼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야곱의 환도뼈를 쳐서라도 그가 가족을 버리고 혼자 도망가는 것을 막으셨다. 이는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는 신약의 약속과 일맥상통한다. 야곱의 위대함은 결국 자신뿐만 아니라 열두 아들 모두를 약속의 땅으로 데리고 들어갔다는 데 있다(물론 르우벤처럼 개인의 죄로 탈락하는 경우도 있지만, 야곱은 끝까지 축복하며 그들을 세우려 했다).
진정한 승리자는 나 혼자 구원받고 만족하는 자가 아니다. 내 자존심, 내 편안함, 내 육체의 안위를 깨뜨려서라도 내 가족, 내 구역 식구, 내가 맡은 영혼들을 이끌고 함께 성 안으로 들어가는 자다. 아가서의 신부처럼, 나 자신이 정결한 신부가 되어 마귀와 싸워 이길 뿐만 아니라, 나중에는 또 다른 신부들을 낳고 길러내는 영적 어미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이기는 자'의 완성이다.
9. 나오며
얍복강의 밤은 깊었고 야곱은 홀로 남았다. 그러나 그 밤은 야곱이 '자기 사랑'이라는 껍질을 깨고 진정한 '이스라엘'로 거듭나는 산실이었다. 오늘 당신의 얍복강은 어디인가? 당신을 가로막고 있는 400명의 군대는 무엇인가?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은 남편도 아니고, 아내도 아니고, 직장 상사도 아니다. 진짜 적은 내 안에 숨어 있는 교만한 자아, 나만 살겠다고 움켜쥐는 이기심, 그리고 끊임없이 불안과 두려움을 주입하는 악한 영들이다. 우리는 이 실체를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적을 알아야 이길 수 있다.
환도뼈가 위골되는 아픔이 있더라도 하나님을 놓지 말라. 상황이 절망적일수록 더욱 기도의 줄을 붙잡으라. 내 힘으로 도망치려 하지 말고, 하나님의 옷자락을 붙들고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라고 매달리라. 그때 하나님은 당신의 이름을 바꾸어 주실 것이다. 패배자에서 승리자로, 도망자에서 상속자로 말이다.
기억하라. 우리는 흙으로 돌아갈 육체를 위해 사는 자들이 아니다. 우리는 영원한 아버지의 집에 들어가기 위해, 오늘도 내 영혼을 가꾸고 치열하게 영적 전쟁을 치르는 거룩한 전사들이다. 나를 넘어 우리 가정과 교회를 함께 살려내는 그날까지, 이 거룩한 씨름을 멈추지 않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글 및 ppt 보기] https://dongtanms.kr/morning_qt/229262
2026년 02월 11일(수)
정보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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