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 여공들의 기도로 세워진 재일대한오사카교회는 재일교포들의영혼의 안식처가 되다.
Автор: 信仰のあゆみ 믿음의 흔적을 찾아서
Загружено: 2020-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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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osakachurch.or.jp/
재일 대한 오사카 교회
오사카 간사이 국제공항에서 다리를 건너오면 키시와다시입니다.
이곳의 하루키 중학교는 1920년대의 방적공장 담벼락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너무 가난한 조선의 어린 소녀들이 삼촌등의 먼저 와서 일하는 지인들의 소개로 오사카와 제주도 간의 배를 타고 돈을 벌려고 왔습니다.
그녀들이 열악한 환경속에서 살인적 노동을 강요받았다. 2m의 담벼락 위에 1m의 철선가시가 설치되었습니다.
월 임금은 20엔이 안되었고 일본소녀들의 70프로 였으며, 일본 올때 배삯, 중개비, 상애회비, 기숙사비 식대,가족에게 송금등 남은 돈은 3엔 정도였다고 합니다. 조선 소녀들이 적게 먹는데도 활기가 있었던 것은 일본인들이 돼지 내장을 버리는 것을 음식을 해서 먹었던 것입니다.
불결한 침구와 영양가 없는 식사로 이질등의 병으로 젊은 나이에 목숨을 잃은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말도 안되는 적은 월급과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다 쓰러져 강제 해고되는 것을 보고 일본인 노동자들과 노동쟁의를 일으켜 요구를 관철시키기도 합니다.
기독신보 1922년 6월 14일자 재일 조선인 하루키교회가 이공장안에서 창립예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한달에 단 이틀 쉬는날 (1일과 15일)을 간절한 마음으로 예배드렸던 것입니다.
오늘 소개할 대한 기독 오사카교회가 있는 이카이노라는 지역은 일제 식민지 시대에 가난을 이겨내고자 이주한 사람들이 모여 살게 되었습니다.
반 이상의 사람들이 제주도에서 온 사람들이며 남자는 화학,도금, 금속등의 일을 여자들은 방적공장에서 일을 하였습니다.
1920년대 수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구하기 위하여 오사카등 공업단지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고베신학교에서 공부하던 김우현과 박상동은
목회사역을 펼치기로 결심합니다.
여공으로 일하고 있던 김의생 자매와 신남수 자매등으로 오사카교회가 탄생합니다.
일본교회들이 하나의 교단으로 통폐합하는 종교단체법이 1939년에 성립되어 일본기독교회에 흡수, 합병되어 해방을 맞이 할때까지
재일 조선 기독교회라는 명칭이 없어지며 일본의 태평양 전쟁으로 교회에 대한 탄압이 심해졌습니다.
해방직후 일본 교단에서 탈퇴하고 1947년 완전한 교회를 조직하게 됩니다.
1954년 문화청으로 종교법인을 인증을 받습니다.
재일대한 오사카교회의 사역중심은 재일동포를 위한 민족주의 중심으로 신사참배때 교회를 폐쇄하며 믿음을 지키며 민족적 신앙을 지켜왔습니다.
재일 동포 사회속에서 조총련과 민단을 신앙으로 하나됨에 힘쓰고 일본을 위한 선교 (일본교인들에게 한국의 문화를 알리는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재일동포의 인권과 차별에 맞서 싸우며 선교에 힘써온 재일대한 기독교회 총회는 교회를 중심으로 사회선교와교육선교로 애신보육원이 있습니다.
오사카의 지역의 재일동포들의 영혼의 안식처가 되고 있다.
제주여성사 자료
http://www.dce.osaka-sandai.ac.jp/~f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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