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통신학이 묻는 수리아저씨의 교회론 문제 2 신앙고백과 역사적 교회관계
Автор: 수리아저씨이바구
Загружено: 2025-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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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교회는 신앙고백 공동체이다. 교회의 존재와 역사를 무시한다는 질문에 답을 하고자 한다.
정통 신학은 교회의 존재가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시작되더라도, 그 교회가 세상 속에서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방식은 인간의 신앙고백과 공동체적 응답을 통해서라고 본다.
즉, “부르심(Call)”은 하나님의 사건이지만, ➬ 그 사건이 “교회”로 형성되기 위해서는 ➬ 그 부르심에 대한 인간의 응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 정통 신학은 교회의 존재와 그 역사적 표현을 구분한다.
하나는 하나님 안에서 이미 존재하는 교회의 본질적 실재이며, 다른 하나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인간의 언어와 행위를 통해 드러나는 가시적 표현이다.
▣ 정통 신학은 수리아저씨 교회론에 “교회가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존재한다면, 인간의 신앙고백은 어디에 위치하는가.”
즉, 이말은 신앙고백이 단순한 부수적 현상이 아니라, 교회가 ‘역사 안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이라면 ➬ 그 신앙고백의 신학적 위상은 어떻게 설명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 수리아저씨는 이 질문에 신앙고백은 원인이 아니라 현상으로 근원이신 존재 자신이 스스로 드러냄이다.
수리아저씨의 교회론은 교회의 기원을 인간의 결단이나 신앙 행위 이전의 하나님의 생명사건으로 본다.
교회는 인간이 모여 ‘결정’한 공동체가 아니라, ➬ 하나님이 불러내신 사건 (에클레시아, “불러내다”) 그 자체로 시작된다.
따라서 교회의 본질은 ➬ “신앙의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의 현존의 결과”이다.
교회는 인간의 행위로 만들어진 조직이 아니라, ➬ 하나님의 임재가 실재적으로 현현한 자리이다.
그렇다고 해서 신앙고백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신앙고백은 교회를 존재하게 하는 ➬ 원인이 아니라, ➬ 이미 존재하는 하나님의 교회가 ➬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언어적 현상이다.
신앙고백은 인간의 언어행위가 아니라, ➬ 하나님의 자기계시가 인간의 언어를 통해 드러나는 사건이다.
교회의 말은 자기의식의 표현이 아니라, ➬ 하나님의 말씀(로고스)의 울림, 곧 존재의 발화이다.
▣ 신앙고백은 “언어적 현상”으로 근원이신 존재가 언어로 자신을 드러내는 사건이다.
여기서 “언어적 현상”은 단순히 ‘말하는 행위’가 아니다. ➬ 그것은 존재가 자신을 언어를 통해 드러내는 현현의 방식이다.
칼 바르트가 말했듯이, ➬ “교회는 말씀의 피조물”이다.
여기서 “말씀”은 정보가 아니라 ➬ 하나님의 인격적 현현이다.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 존재가 생기며, ➬ 그 존재가 다시 언어로 자신을 드러낼 때, ➬ 그 자리가 바로 교회의 현현이 된다.
따라서 신앙고백은 인간의 입을 통해 울려 퍼지는 ➬ 하나님의 자기계시 사건이다.
인간은 말의 주체가 아니라, ➬ 하나님의 말씀이 울려 나오는 통로다.
즉, 교회는 하나님이 자기 자신을 발화하시는 자리이다.
▣ “발화”란 존재의 자기 계시로써 ➬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 안에서 말해지는 순간이다.
그러므로 “발화”는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 존재가 자신을 언어로 계시하는 순간이다.
인간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고백은 ➬ 인간이 만든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울려 나오는 자리이다.
이때 인간은 말하는 자가 아니라 들려지는 자, ➬ 즉 하나님의 말씀을 ‘통과시키는 존재’이다.
호세아 2장 23절 “너는 나의 백성이라”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이 ➬ 마태복음 16장 16절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러한 고백으로 되돌아오는 반향이 바로 우리의 신앙고백이란 말이다.
따라서 신앙고백은 인간의 결단이 아니라, ➬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의 언어 속에서 반향되어 울려 퍼지는 사건이다.
이때 교회의 존재는 하나님 안에서 이미 주어져 있고, ➬ 그 존재가 언어로 드러나는 것이 바로 신앙고백이다.
▣ 존재적 교회와 역사적 교회는 어떻게 구분되는가.
정통 신학은 존재적 교회와 역사적 교회를 구분하지만, ➬ 수리아저씨의 교회론은 그 둘을 단절시키지 않는다.
존재적 교회는 하나님의 부르심 안에서 이미 완성된 실재이며, ➬ 역사적 교회는 그 실재가 언어와 공동체의 형식을 통해 ➬ 세상 속에 드러나는 과정이다.
이 둘은 원인과 결과의 관계가 아니라, ➬ 동시적이고 상호내재적인 관계이다.
하나님이 부르시는 (존재) 이시다. ➬ 그 부르심이 인간 안에서 말이 되어 (언어)로 표현된다. ➬ 공동체 안에서 생명으로 나누어진다 (역사)이다.
이 흐름은 수직적 인과가 아니라 임마누엘적 순환이다.
하나님이 부르시는 사건과 인간이 고백하는 사건은 ➬ 서로 다른 두 사건이 아니라, 하나의 동일한 발화 안에서 일어난다.
이때 교회의 존재와 역사는 말씀의 호흡(רוּחַ) 속에서 함께 움직인다.
▣ 수리아저씨 신앙고백에서 “신앙고백”의 결론은 교회는 부르심의 존재이고, 신앙고백은 그 존재의 발화이다.
결국 수리아저씨의 교회론은 이렇게 정리된다. ➬ 교회는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존재하고”, ➬ 신앙고백은 “그 존재가 말이 되는 자리”이다.
신앙고백은 교회의 근거가 아니라, ➬ 하나님의 현존이 언어로 드러나는 현상이다.
곧 임마누엘의 사건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존재와 신앙고백은 나란히 흐르는 두 강줄기다.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 교회가 생기고, ➬ 그 교회가 그 말씀을 발화할 때, ➬ 그 자리가 바로 하나님의 현존, ➬ 즉 임마누엘적 교회가 된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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