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여행; 전북 전주시_옛 전주의 중심을 걷다
Автор: 이사부의 디지털 노트
Загружено: 2025-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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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촬영; 2025년 11월 13일
편집 업로드; 2025년 11월 14일
버스 여행; 전북 전주시_경기전과 전주향교
시외버스와 자전거 타기, 걷기로 옛 전주의 중심을 걸었다. 전주는 전라도全羅道의 전全을 담당하는 도시다.
가을이 짙어지며 전주를 찾았다. 전주향교의 은행 단풍과 조선 건국과 관련된 옛 이야기가 어떤 모습으로 있는지 궁금했다.
전주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공유 자전거로 전주천 자전거길을 따라 한벽당까지 서다 달리기를 반복했다. 깨끗하고 평온한 길을 따라 가을 단풍과 물소리가 좋았다. 다시 가고 싶은 길이었다.
한벽당부터 옛 전주의 흔적을 찾아 걸으며 지금의 모습을 담았다. 몇 권의 여행기와 검색, 영상들과 비교할 수 없는 전주의 가을을 느끼는 시간이었다.
1. 전주시외버스터미널
ㆍ옛 전주의 중심이었던 지금의 한옥마을과 그리 멀지 않다. 고속버스 터미널도 바로 옆에 있어 전주는 버스 여행도 편하게 할 수 있다.
ㆍ옛 전주의 중심이었던 핵심 기관들이 지금의 한목마을과 가까이 있다.
ㆍ전주한옥마을은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전주시 공유 자전거 "따봉자전거"를 타고 전주천을 따라 약 3km거리에 있다. 걸어가도 좋은 거리로, 풍경도 좋다.
2. 한벽당과 한벽굴
ㆍ한벽당은 조선초기 개국공신 최담이 세운 정자이며, 한벽굴은 일제강점기 때 전주역과 전주시내를 연결하기 위해 만들졌던 철길 아래의 굴이다.
ㆍ한벽당에 오르면 시내로 들어오는 전주천의 경치가 운치있다.
3. 전주향교
ㆍ서울의 성균관을 모방하였다고 하여 수도향교(首都鄕校)라고도 불렀다.
ㆍ고려 말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며, 당시 위치는 현재 경기전 부근이었으나 조선 태조 이성계의 영정을 봉안하기 위하여 경기전이 세워지자 1410년(태종 10) 향교에서 경기전에 들려오는 소리가 시끄럽다고 하여 전주성의 서쪽 6~7리 되는 황화대 아래 지금 화산동으로 이전했다.
ㆍ1603년(선조 36)에 부성(府城)과 너무 떨어져 있고 객사를 기준으로 좌사우묘(左社右廟)제도에 어긋난다 하여 순찰사 장만(張晩)과 유림들이 힘을 합쳐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였다. 향교 앞 교동 일대는 현재 한옥보존지구로 지정되어 있다.
ㆍ조선 후기까지 전주향교는 경내에 대성전, 동무와 서무, 신문神門, 외문外門, 만화루萬化樓, 명륜당, 동재와 서재, 계성사啓聖祠, 입덕문入德門, 사마재司馬齋, 양사재養士齋, 책판고冊板庫, 제기고祭器庫, 수복실 등 총 99칸 건물로 구성된 규모가 큰 향교다.
4. 이목대
ㆍ이목대는 조선 태조 이성계의 4대조 목조 이안사(李安社)의 유허(遺墟)로서 시조 이한(李翰) 때부터 누대에 걸쳐 살던 곳이다. 이에 대한 내용은 《용비어천가》에도 묘사되어 있다. 고종이 친필로 쓴 ‘목조대왕구거유지穆祖大王舊居遺址’가 새겨진 비가 오목대와 동시에 세워졌다.
5. 오목대
ㆍ1380년(우왕 6) 삼도순찰사 이성계가 황산에서 왜구를 토벌하고 귀경하는 도중 승전을 자축하는 연회를 열었던 곳이다.
ㆍ이성계가 이곳에서 ‘대풍가大風歌’를 읊으며 나라를 세우겠다는 야심을 보이자 이를 눈치챈 정몽주는 남고산성의 만경대에서 고려를 걱정하는 시를 읊었다고 전해진다.
ㆍ조선 왕조를 개국한 뒤 이곳에 정자를 짓고 오목대라고 이름 지었는데 이곳에 오동나무가 많아서 그렇게 불렀다는 설이 있다.
ㆍ대한제국 선포 후 1900년 고종이 쓴 ‘태조고황제주필유지太祖高皇帝駐畢遺址’가 새겨진 비가 세워졌다.
ㆍ경기전慶基殿의 남동쪽 500m쯤 떨어진 곳, 나지막한 언덕에 위치하며 옛날에는 동쪽의 승암산에서 오목대까지 산이 이어져 있었으나 전라선 철도가 부설되면서 맥이 끊겼다.
6. 경기전
ㆍ조선왕조를 연 태조의 어진을 봉안하고, 제사를 지내기 위해 태종 10년(1410년) 지어진 건물이다.
ㆍ전주, 경주, 평양 등의 어진 봉양처를 처음에는 어용전이라고 불리었는데, 태종 12년(1412년)에 태조 진전眞展이라 하였다가 세종 24년 (1442년)에 전주는 경기 전, 경주는 집경전, 평양은 영숭전이라 각각 칭하였다.
ㆍ선조 30년(1597년)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으나 광해군 6년(1614년) 중건되었다.
ㆍ경기전은 누구든 말에서 내려야 한다는 신성함을 표시한 하마비, 붉은 색칠을 한 홍살문, 외신문, 내신문 그리고 어진을 모신 정전으로 구성되어 있다.
ㆍ왕실 사당임을 감안할 때 신문神門이라고 호칭되며 홍살문 안쪽 내·외신문의 세 문을 통과할 땐 ‘동입서출’, 다시 말해 동쪽(오른쪽)으로 들어가 서쪽(왼쪽)으로 나와야 한다. 가운데는 태조의 혼령이 드나드는 ‘신도’이기 때문이다.
ㆍ경기 전은 조선 태조 이성계의 어진 봉안과 함께 전주사고史庫가 설치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안고 있다.
ㆍ경기전에 사고가 설치된 것은 1439년(세종 21년)의 일이다. 경내에는 태조의 영정을 봉안한 경기전과 그의 22대 조이며 전주 이 씨의 시조인 신라 사공공司空公 이한李翰부부의 위패를 봉안한 조경묘肇慶廟가 있다. 특히 태조 어진과 함께 현존하는 조선왕조 어진들이 모셔진 어진박물관도 자리하고 있다.
7. 전동성당
ㆍ1908년에 지어진 천주교 성당이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세워진 서양식 벽돌 건축물 중 하나로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졌다.
ㆍ1791년 신해박해 때 윤지충(바오로)이 모친상 때 교리를 좇아 신주를 불태우고 제사를 지내지 않자 당시 유림들의 극심한 비난을 받게 되었고 이에 윤지충과 관련된 권상연(야고보)이 참수형을 당한 한국 최초의 천주교 순교터이며, 호남의 모태 본당이 된 전교의 발상지이다.
ㆍ두 성인이 순교한지 1백년이 지난 1891년 봄, 순교터에 본당 터전을 마련해 전교를 시작했다.
ㆍ초대 주임신부인 보두네 신부가 순교 1백주년을 기념해 1908년 건축을 시작, 서울 명동성당을 설계한 프와넬 신부의 설계로 1914년 완공됐다. 착공에서 성전봉헌까지 무려 23년이 걸린 것이다.
ㆍ일제 강점기였던 당시 통감부는 전주에 새 길을 내기 위해 풍남문 성벽을 헐었는데 보두네 신부가 그 성벽의 돌들을 가져다 성당 주춧돌로 사용했다고 한다.
ㆍ성당 지하에는 당시 썼던 주춧돌이 성당을 탄탄히 떠받치고 있다. 공사는 중국인 벽돌공 백여명이 동원돼 전주성을 헐은 흙으로 벽돌을 구웠고, 석재는 전북 익산의 황등산의 화강석을 마차로 운반해 왔다. 목재는 치명자산에서 벌목해 사용했다고 한다.
ㆍ전동성당은 완전한 격식을 갖춘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동서양이 융합된 모습이어서 어머니의 품처럼 따스함을 느끼게 한다. 호남지방의 서양식 근대건축물 중 규모가 가장 크고 오래된 것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ㆍ화강석을 기단으로 사용한 붉은 벽돌 건물로서, 내부는 둥근 천장으로 되어있고 중앙의 종탑을 중심으로 양쪽에 배치된 작은 종탑들은 조화로운 입체감과 건물의 상승감을 더해준다.
ㆍ비잔틴 풍의 종머리는 건물 본체와 잘 어우러져 사진촬영 명소로 도 각광받고 있다.성당 앞에 세워진 하얀 그리스도 상은 성당의 아름다움을 더욱 돋보이게 하고 '한국 최초 순교터' 라고 새긴 기념비는 이 곳 전주의 아픈 천주교의 역사를 품은 전동성당의 존재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8. 풍남문
ㆍ옛 전주읍성의 남쪽문으로 정유재란 때 파괴된 것을 영조 10년(1734) 성곽과 성문을 다시 지으면서 명견루라 불렀으며, 풍남문이라는 이름은 관찰사 홍낙인이 영조 44년(1768) 다시 지으면서 붙인 것이다.
ㆍ순종 때 도시계획으로 성곽과 성문이 철거되면서 풍남문도 많은 손상을 입었는데 지금 있는 문은 1978년부터 시작된 3년간의 보수공사로 옛 모습을 되찾은 것이다.
ㆍ규모는 1층이 앞면 3칸, 옆면 3칸, 2층이 앞면 3칸, 옆면 1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짠 구조가 기둥 위에만 있다.
ㆍ평면상에서 볼 때 1층 건물 너비에 비해 2층 너비가 갑자기 줄어들어 좁아 보이는 것은 1층 안쪽에 있는 기둥을 그대로 2층까지 올려 모서리 기둥으로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9. 전라감영
ㆍ1896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전라감영은 전라북도 도청의 행정업무 공간으로 사용하였으나 근대화 과정에서 대부분 소실되고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선화당도 1951년에 폭발 사고로 불타버렸다.
ㆍ2015년 옛 도청 건물을 철거하고, 2017년부터 복원 공사를 시작하여 선화당, 연신당, 내아, 관풍각 등을 복원하고 2020년 10월에 1단계 사업을 완료하고 문을 열었다.
ㆍ연신당 뒤에는 전라감영의 유일한 흔적이라 할 수 있는 수명이 200년이 넘는 보호수가 자리하고 있다. 선화당에서는 전라감영의 옛 모습을 디지털 영상으로 볼 수 있으며 문화해설사와 함께하는 정기해설투어는 하루 세 번 선화당과 관풍각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10. 전주 풍패지관(전주객사)
ㆍ전주를 찾아온 벼슬아치와 사신을 대접하고 묵게 하던 조선시대 숙소다.
ㆍ조선시대에는 매달 초하루와 보름에 대궐을 향해 예를 올렸으며 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는 축하 의식을 거행했다.
ㆍ이곳의 건물은 왕을 상징하는 전패를 모시는 주관과 숙소로 사용하던 익헌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주관의 처마 아래에 풍패지관이라고 쓴 거대한 편액은 전주객사의 위상을 보여준다.
ㆍ풍패란 한나라를 건국한 유방의 고향에서 비롯된 것으로 건국자의 본향을 일컫는데 전주는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본향으로 풍패지향이라 하고 전주객사는 풍패지관이라 한다.
ㆍ옛 전주의 중심 주변으로 자만벽화마을, 한옥마을 등 전주의 인증샷 명소들이 가까운 거리에 있으며 다양한 맛집과 카페가 들어선 객리단길을 함께 둘러보며 걷는 여행이 좋은 곳들이다.
ㆍ자료는 네이버에서 찾고 재편집했다.
11. 배경 음악
ㆍ도시의 강변길
ㆍ2025 가을 1
ㆍ2025 가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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