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래영광교회 주일설교와 원고: 예배 잘 드리는 교회(2) 요한복음
Автор: 비래영광교회
Загружено: 2026-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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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 잘 드리는 교회 Ⅱ 요한복음 4장 19-24
2026/01/04 신년 감사주일 203장 나의 생명드리니
어느 주일 아침 아이가 말합니다.
“엄마, 아빠! 오늘은 예배 시간에 졸지 마. 나 창피하단 말이야. 알았지?” 주일 아침. 교회로 가면서 양쪽에 엄마 아빠 손을 잡은 어린아이가 말했습니다.
가족이 교회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성가대의 송영이 끝나고 신앙 고백을 하고 있었습니다. 부부는 윗몸을 숙이고 빈자리를 찾아 간신히 자리에 앉았습니다. 예배가 시작된 지 벌써 5분쯤 지났을 때였습니다.
주보에 적힌 별 표시를 따라 앉았다 일어났다 하면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찬양이 끝나고 지루해 보이는 대표 기도가 끝나자 성경 봉독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설교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날따라 유난히 길게 느껴지는 설교였습니다. 귀에는 설교가 들렸으나 눈으로는 주보를 보고 있었습니다. 교회 소식을 낱낱이 읽고 틀린 글자를 잡아내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런데도 설교는 끝나지 않고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잠시 후, 엄마 아빠 사람의 몸이 좌우로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한 주간의 피로가 엄습하며 졸음이 몰려왔습니다. 설교자의 어조가 상승할 때에는 졸음에 겨운 눈을 치켜떴지만, 이내 눈꺼풀은 다시 감겼습니다. 설교를 듣는다기보다는 졸음과 힘겹게 싸우고 있었습니다.
그때 아이가 참을 수 없다는 듯 칭얼대며 졸랐습니다.
“엄마, 아빠! 졸지 말고 빨리 요금 내고 집에 가자.”
김남준 목사님의 예배의 감격에 빠져라에 나오는 일화입니다.
예배에 대한 우리 그리스도인의 잘못을 꼬집는 것 같아 한 명의 그리스도인으로서 목회자로서 뒤를 돌아보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사마리아라고 하는 지역을 지나가십니다. 지나가시다가 한 우물가에서 쉬고 계셨습니다. 가시던 길이 고되셨는지 물을 드시고 싶으셨습니다. 그런데 말씀을 보니까 예수님은 우물에서 물을 뜰 두레박이 없으셨습니다.
그런데 그 때 한 여인이 우물가로 옵니다. 예수님은 그녀와의 대화를 시작합니다.
대화의 주제는 첫 번째는 생명의 물~ 영생의 물~ 영생에 관한 주제입니다. 이 여인은 그 영생의 물을 달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두 번째 대화는 예배의 대한 대화였습니다. 영생에서 예배로 넘어가는 이 흐름이 참 자연스럽습니다. 예배는 목마르지 않는 영생을 살아가게 하는 하나님과의 만남이기 때문입니다.
영생에서 예배~ 이것이 거듭난 그리스도인의 자연스러운 흐름입니다. 영생은 죽어서 가는 것이 아닙니다. 영생은 지금 하나님과 연결되는 삶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집중하는 이 예배는 영생의 가장 집중된 시간입니다.
예배의 뜻은 히브리어 헬라어 모두에서 섬김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23절에서도 절하다~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은 여인에게 예배드릴 때 영과 진리로 예배드리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 많이 썼다가 지웠습니다. 다음에 함께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영과 진리로 예배드린다~ 이 말씀을 쉽게 말하면
성령님의 은혜로 집중하고 예수님을 통해 보여주신 하나님의 뜻을 따라 드리는 것~이 예배라는 것입니다. 하늘에 속한 정신과 자세로~
(WBC 카리스 황원하)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것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예배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예배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시간이고 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간이며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마땅히 드려야 하는 시간입니다.
이렇게 귀한 것이 예배인데 사마리아 여인도 이 예배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영생 다음으로 이 예배를 질문 한 것이죠~
그럼 예수님의 말씀을 전한 우리의 모범인 사도들과 처음 교회 성도들은 언제 어떻게 그리고 어디서 예배 드렸을까요?
먼저 언제~ 예배드렸는냐~입니다.
최초의 기독교 공동체는 매일 모여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행(2:46) 하지만 시간이 흘러서 1세기 중반에 이르자 우리 기독교 인들은 일요일인 주일에 모여서 예배드렸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요일이 일요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부활은 우리에게 새로운 생명이 있는 날입니다. 고린도전서 16장 2절에 나타납니다.
고린도전서 16장 2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간 다음에야 비로소 헌금하느라고 서두르지 말고 여러분은 일요일마다 각각 자기 형편에 따라 얼마씩을 미리 저축해 두십시오.
혹자는 태양신을 섬기는 날이 일요일이라고 거부합니다. 그리고 한 참 뒤에나 일요일에 예배드리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아닙니다.
주일~ 일요일은 우리에게 복음을 전해준 사도들과 처음교회~ 그리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날입니다. 그러므로 주일은 하나님께 집중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신 부활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습니다.
주일은 주일입니다. 주일은 구별되어야 합니다. 정말 어쩔 수 없는 상황~ 그 상황이라도 주일은 주일로 지켜야 합니다. 다른 때보다 더 거룩하게 더 하나님을 높이고 교체하며 보내야 합니다. 힘을 써서~
두 번째로 어떻게~ 예배드렸느냐~입니다.
초대교회 예배구성은 이렇습니다.
말씀 기도 찬양 성찬 교제 헌금 은사집회 등이 있었습니다. 때로는 찬송 기도 성경 설교로 드려지기도 했고(엡 5:19 골 3:16) 또 특별하게 방언을 말하는 순서가 있기도 했죠~(고전 14장) (청지기 성경사전)
이렇게 상황과 전통에 따라 예배드리는데 지금도 그 전통은 내려옵니다. 예배는 하나님과 만나도록 교회의 봉사자들이 열심히 준비한 순서입니다. 그리고 가장 집중하기 쉬운 순서입니다. 이 예배 순서 순서에 집중해서 예배에 성공해야 합니다. 그래서 슬기로운 예배 생활 10계명 주보에 넣으거 아니에요~
근데 집중하기가 쉽지 않아요~ 방해 요소가 있죠~
한 번은 예배드리는데 이런 일이 있었대요~ 교회에서 한 참 통성 기도 중에 성도님의 핸드폰이 울렸습니다. 목사님이 웃으면서 열심히 기도하시니 하나님께서 핸트폰으로 응답을 주셨나봅니다. 받아보세요~ 라고 유머로 넘기셨습니다.
그런데 기도가 끝나고 목사님의 설교 말씀 중에 목사님의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리는 겁니다. 그러자 목사님이 핸드폰을 들고 받더니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하나님 지금 설교 중이거든요 설교 빨리 끝내고 전화 드리겠습니다~
예배에 예기치 않은 일들이 벌어지죠~ 그러나 슬기로운 예배생활 다시 보셔서 모든 일들을 이겨내는 믿음의 근육~ 집중의 힘을 기르시기 바랍니다. 집중은 은혜의 통로입니다.
새해 송구영신예배를 드렸습니다. 그 예배 본문에 이 말씀이 있어요~
주를 향하여 손을 펴고 내 영혼이 마른 땅 같이 주를 사모하나이다(시편 143:6)
여러분~ 우리 새해에는 이렇게 예배드리시기를 축복합니다. 주를 향하여 손을 펴고~ 영혼이 메말라 땅 같이 주를 사모하나이다~ 정말 간절히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하며 무엇보다 내가 집중해서 하나님께 영광돌리도록~
세 번째로 처음 교회는 어디서 모였을까?
처음에는 성전과 회당 그리고 집에서 모였습니다. 유대교와 완전히 갈라지지 않았을 때에는 성전에서도 모였습니다. (행 2:46 19:8)
유대인과 멀어지고 가정교회에서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롬 16장) 그러나 그렇다고 가정에서만 모여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초대교회는 오늘 예수님의 말처럼 성전을 고집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께 묻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자기네들 산에서 예배하라고 하고 (그리심 산)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서 예배하라고 하는데 어디서 예배하면 하나님께서 받으시냐고 묻습니다.
이 때에 예수님은 어디서나 예배 할 때가 온다고 말씀합니다. 어디서나~ 그 때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서 돌아가실 때~ 그리고 다시 부활하실 때를 의미하죠~ 그 때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때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어디서나 예배 할 수 있습니다.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차에서도 언제나 어디서나 예배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일상의 예배라고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어디서나 예배할 수 있다고 해서 교회의 예배를 드리지 않아도 되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은 개인의 예배와 공동체의 예배를 때로는 별도로 강조하며 때로는 하나로 연합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의 부조리함과 완악함으로 살아간 사람이 회개 없이 돌아섬 없이 예배드리는 것 하나님은 그것을 받지 않으십니다.
아모스 5장 21, 24 함께 읽겠습니다. (새번역)
나는, 너희가 벌이는 절기 행사들이 싫다. 역겹다. 너희가 성회로 모여도 도무지 기쁘지 않다.
너희는, 다만 공의가 물처럼 흐르게 하고, 정의가 마르지 않는 강처럼 흐르게 하여라.
개인의 예배는 공적인 예배와 이어져 있습니다. 평소에 아무렇지도 않게 하나님을 무시하고 살다가 주일이 되어서 회개 없이~ 이게 중요하죠~ 회개 없이~ 회개 하면~ 되고~ 회개 없이 예배드리면 그건 바른 예배가 아닙니다.
일상의 예배도 중요하지만 공동체 예배도 중요합니다. 무슨 말이냐면~ 어디서나 예배하면 되지 뭐~ 꼭 교회에서 예배 드려야 하나?~ 이런 생각은 잘 못됐다는 겁니다.
예수님은 그런 의미로 어디서나 예배드릴 수 있다고 한게 아닙니다. 시간과 장소를 초월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와 교제해 주신다고 하신겁니다.
만약 안 모여도 된다면 우리 믿음의 선배들~ 우리는 사도적 교회니까~ 왜 사도들이 그렇게 다니는데마다 모였겠어요~
근데 그 때도 지금도 교묘하게 모이지 못하게 하는 사람들이 많고 이 핑계 저 핑계 대고 모이는 예배를 등한시 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히브리서 10장 25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새번역)
어떤 사람들과 같이, 모이는 일을 그만두지 말고, 서로 격려하여, 그 날이 가까이 오는 것을 볼수록 더욱 힘써 모입시다.
그 때도~ 저 옛날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었던 거죠....
(유튜브 글자수 제한으로 후략합니다. 홈페이지에 설교전문이 있습니다. 홈페이지: https://brgc.clickn.co.kr/)
#설교 #비래동교회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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